“선배의사들이 있었기에 내시경수술이니 로봇수술이니 미세수술이니 하는 첨단의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한 의대교수가 의학 발전을 이끌어온 선배의사들을 홀대하는 젊은 의사들에게 쓴소리를 남겼다.
대한비뇨기과학회 이사장을 역임한 포천중문의대 강남차병원 권성원(비뇨기과) 교수는 최근 수석회 수필집인 ‘음악이 흐르는 진료실’에 ‘포로와 마돈나’라는 글을 올렸다.
이 수필은 권 교수가 60~70년대 적십자병원 외과과장을 역임한 고 이영린 박사로부터 호된 인턴 수련을 받았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 ‘염라대왕’으로 불렸던 이영린 박사는 외과과장으로서 칼솜씨 하나는 당대 고수였고, 아침 6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숙소에 나타나 인턴들을 다그쳐 깨운 후 항상 직원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그리고 오전 8시면 무조건 칼을 잡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권 교수는 이영린 박사가 서울의대 교수를 지낸 의학박사이고, 서울 굴지의 종합병원 외과과장이었지만 6·25 당시 인민군 군의관 대위 신분의 포로였다는 사실을 신문기사를 통해 알게 됐다.
이영린 박사는 평양의대병원에서 외과의사로 재직하다 인민군 군의관으로 전쟁에 참여했다가 전쟁포로 신세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박사는 포로 신분이면서도 왼쪽 신장이 파열된 포로환자를 살리기 위해 환자를 들쳐 업고 제14야전병원으로 달려갈 정도로 의사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감히 포로인 주제에 병원 당직 장교에게 포로를 수술하겠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당시 당직장교가 수필에서 마돈나로 묘사된 ‘메리 중위’였다. 이 박사는 그녀를 끝내 설득해 변변한 수술도구도 없이 손전등까지 비춰가며 신장절제수술을 직접 집도해 환자를 살려냈다.
권 교수는 이영린 박사가 당대 최고의 외과의사였던 장기려 박사의 수제자였다고 소개했다.
권 교수는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이 ‘대왕’”이라고 적었다.
또 권 교수는 “그의 지독한 시집살이와 칼의 교육은 40년 칼잡이 의사생활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면서 “어쩌면 선생님과 같이 했던 인턴 생활은 가장 많은 것을 배운 제 인생의 황금시기였다”고 고백했다.
이어서 권 교수는 “생전에 한번쯤 찾아뵙고 그 좋아하시던 청요리와 배갈 한 독구리라도 대접했더라면 그래도 사람노릇 한번 하는 건데”라며 “늙어서 철난다는 옛말이 그른 게 아니다”며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면서 권 교수는 “이렇게 좋은 세상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386세대들에게 고한다”면서 “피로 물든 강산에서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삶을 살아온 어르신네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풍요와 번영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그는 젊은 의사들에게도 뼈있는 말을 남겼다.
그 끔찍했던 환경을 탓하지 않고 의학을 지켜낸, 목숨을 걸고 의학을 사랑했던, 대왕과 같은 선배들이 있었기에 내시경수술이니 로봇수술이니 미세수술이니 하는 첨단의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그는 “그들을 무시한다는 것, 홀대한다는 것, 모른 체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 줄 아느냐”면서 “제발 그만들 두라”고 꼬집었다.
권성원 교수는 17일 메디칼타임즈와의 통화에서도 후배의사들에 대한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권 교수는 “과거 우리가 수련을 받을 때에는 선생들이 퇴근하지 않으면 어디 나가지도 못할 정도로 모셨고,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면서 의학 발전과 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면서 “그런데 요즘 젊은 의사들은 선배들을 홀대하고 의료계 위계질서가 무너졌다”고 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