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를 다량으로 마셔 응급실로 실려온 환자가 의사의 위 세척 처치를 거부한다면 응급의학 의사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인제의대 부산백병원 응급의학교실(차지훈, 김미란, 김양원, 전병민)이 최근 응급의학과 전문의·전공의 192명을 대상으로 응급의료 윤리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응급의학과 의사의 68%는 "강제로 진정제라도 투여해서 위세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세척이 어렵다면 다른 약물 치료만이라도 해야 한다'가 29.7%의 응답률로 뒤를 이었다.
또 고령의 말기 암 환자가 심정지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왔고, 소생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며 가족들이 DNR(Do Not Resuscitation)을 요구한다면.
이 경우 의사들의 96.5%가 DNR을 허락하겠다고 답했다. 의학적 회복이 불가능하고(72%), 환자의 품위있는 죽음을 위해서(17.7%)라는 이유이다.
반면 환자가 요청하지만 가족은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는 경우에는 55.7%가 DNR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법적 분쟁 가능성, 생명연장의 도모가 의료인의 본분이라는 생각에 근거한 것이다.
반대로 DNR 요청에 대해 동의하겠다는 의사는 환자본인의 의사를 존중하며, 의학적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들었다.
응급의학 의사들은 타 병원 의사나 응급구조사 등과도 의료윤리 문제에 부딪친다.
타 병원 응급실 당직의사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환자를 보내 상태가 악화된 경험이 있다는 의사가 92.7%에 이르렀다.
이럴 경우 51.8%가 담당의사와 통화해 잘못을 지적하고 타이른다고 했으며, 33.5%는 그냥 넘어간다고 답했다. 하지만 환자나 보호자가 전원 보낸 병원의 잘못에 대해 언급할 경우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대답한 의사가 36.5%에 이르렀고 '최선을 다한 것이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28.1%였다.
구급대원의 병원 전 처치가 부적절해 예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 경우에 대해서는 57.8%가 '주의시킨다'고 대답했고 28.1%는 그냥 넘어간다고 답했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가져야 할 자질, 자세로서는 응급환자에 대한 민첩성(5점 척도로 4.43)이 가장 많이 뽑혔는데, 소명의식(4.39), 신중함(4.35)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이타성(3.43), 환자에 대한 존경심(3.73), 의학 연구의 수행(3.77) 등이 낮은 점수를 받았다.
부산백병원 응급의학교실 연구팀은 "위세척을 거부한 사례는 의사가 처치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잘못이 있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례가 있다"면서 "응급의학 의사 대다수가 진료 중 의료 윤리적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으며 동료 의사와의 관계, 구급대원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응급실 진료 현장에서 겪는 문제에 대해 대다수가 윤리적 결정에 대한 교육 및 훈련의 필요성에 찬성했다"면서 "응급의학과 의사를 위한 윤리강령이나 윤리지침이 있다면 임상에 적극 활용하겠다고 답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