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절개술이 필요한데도 자연분만을 고집하는 임산부의 뜻을 꺾지 못해 신생아가 사망한 사건에 의사도 절반의 책임을 지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와 의료계가 실의에 빠졌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번 판결은 우리나라 의료현실을 도외시하고 의사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무지에서 나온 판례로 차라리 법원에서 환자응대 지침을 마련하면 따르겠다는 일부 자조섞인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환자의 뜻을 따르자니 사고가 걱정되고 의사의 주장만을 관철시키자니 과잉진료에 대한 삭감우려와 환자가 동의 없이 수술했다며 책임소재를 물으면 대처 방법이 없어 문제라는 것.
H산부인과의 한 전문의는 "사실 의학적인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설명해주고 이에 따른 치료를 실시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라며 "아무리 설득해도 환자가 거부하면 그만인데 그에 대한 책임을 의사에게 묻다니 말도 안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또 다른 전문의는 "의료사고에 대한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방어진료를 비난할 수도 없는 처지"라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현 의료계의 현실에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B산부인과 의사는 "산모가 위독한 상태인데도 불구, 자연분만을 고집한 것은 정부가 의료기관의 제왕절개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은 결과"라며 "의사와 환자의 라뽀를 이 지경으로 만든 복지부와 심평원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대한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 최영렬 회장은 "판결을 받은 의사가 왜 협회에 도움을 청하지 않았는지 의아하다"며 "해당 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 후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고법 민사17부(재판장 구욱서 부장판사)는 `뒤늦게 제왕절개를 시도하는 바람에 신생아가 숨졌다'며 이모씨 부부가 H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한 원심을 깨고 "피고는 6천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그러나 "이씨 역시 다른 병원에서 제왕절개술 준비까지 마쳤음에도 자연분만을 고집, 퇴원한 뒤 H병원에 입원했고, H병원 역시 제왕절개술을 적극 권유했지만 자연분만을 앞세우다 사고가 발생한 측면이 있는 만큼 50%의 과실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