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보건복지가족부가 요양시설 입소 노인들의 진료권을 크게 약화시켜 의료사각지대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4일 보도자료를 통해 “7월부터 노인요양시설은 촉탁의제도나 협약의료기관을 선택해 입소노인의 건강관리를 하도록 했다”면서 “협약의료기관 의사는 입소노인 개인별로 ‘2주에 1회 이상’ 시설을 방문해 노인의 건강상태를 확인토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건복지가족부는 보도자료에서 요양시설이 협약의료기관이 아닌 촉탁의와 계약을 맺을 경우 몇 회 이상 입소노인들을 진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보건복지가족부 보도자료대로 한다면 요양시설과 진료 계약을 맺은 촉탁의는 종전대로 ‘매주 2회 이상’ 시설을 의무적으로 방문해 입소자의 건강상태를 확인해야 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같은 날 공개한 ‘협약의료기관 및 촉탁의사 운영규정’에 따르면 협약의료기관 의사든 촉탁의든 요양시설을 방문해 입소자 별로 2주에 1회 이상 진찰 등을 실시하면 된다.
다시 말해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이 개정되기 이전 요양시설과 계약을 맺은 촉탁의는 주2회 이상 진료를 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촉탁의든 협력의료기관의사든 2주에 1회 이상만 진료하면 된다.
입소노인들은 과거에 비해 의사를 볼 수 있는 기회가 1/4만큼 줄어든 것이다.
문제는 보건복지가족부가 지난 5월 노인복지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이런 사실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개정안에는 ‘양로시설과 노인요양시설은 전담의사 또는 촉탁의사를 두거나 의료기관과 협약을 체결해 의료연계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만 언급돼 있다.
협약의료기관제도 신설 근거만 명시했을 뿐 협약의료기관 의사는 몇 회 이상 요양시설에서 진료를 해야 하는지 전혀 명시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자 의료계에서는 정부가 요양시설 입장에서 볼 때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촉탁의제도를 없애고 협약의료기관제도로 대체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다시 말해 촉탁의가 주2회 이상 진료를 하면 월 190만원 가량을 지급해야 하는데 협약의료기관 의사는 진료횟수가 정해져 있지 않아 요양시설 입장에서는 굳이 비용 부담이 큰 촉탁의를 쓸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요양시설장의 편에서 노인복지법을 개정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자 복지부 고위관계자는 노인병원협의회 박인수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촉탁의 제도는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하지만 보건복지가족부는 ‘협약의료기관 및 촉탁의사 운영규정’을 통해 그간의 약속을 번복했다.
이에 대해 일부 병원계에서는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는 비난까지 쏟아내고 있다.
모노인병원 원장은 “노인요양시설에 입소한 요양 1, 2등급 노인 대다수가 뇌성마비, 척수손상에 의한 마비, 편마비, 파킨슨병, 신경성희귀난치성질환을 가진 중증 환자라는 점에서 진료횟수를 축소시킨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이는 요양시설장들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대변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는 “의사가 시설을 방문해 입소자별로 진찰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과거보다 진료환경이 개선된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