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가 향후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의도로 의료기관과 합의했더라도 그 금액이 손해배상금에 비해 턱없이 적다면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부산지법 제8민사부는 최근 혈액량 감소성 쇼크에 의한 저혈압으로 뇌손상을 입은 환자와 유가족이 당초 병원과 합의금이 잘못됐다며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환자의 손을 들어줬다.
의료기관과 환자와의 합의도 중요하지만 환자가 경솔히 합의를 체결해 손해배상금보다 턱없이 적은 금액을 받았으므로 공정한 법률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5일 판결문을 통해 "운전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해온 유가족들은 당시 병원비를 내기도 힘든 상황이었다"며 "이러한 상황때문에 어쩔수 없이 병원비 감면과 1천만원의 합의금에 합의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유가족의 상황을 볼때 적절한 손해배상금에 대한 개념이 없어 성급히 손해배상금을 포기하고 합의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는 민법 104조에 의해 불공정한 법률행위로 봐야 한다"고 합의내용을 부인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환자 A씨는 검은 변과 복부통증을 이유로 B병원에 입원, 혈압체크와 피검사, 상부 위내시경 검사를 받고 생리식염팩 등의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고통을 호소하던 A씨는 결국 저혈압 쇼크로 의식이 없어졌고 C병원으로 급히 전원됐지만 자궁외 임신에 의한 복강경 출혈이 발생, 저혈압성 쇼크로 뇌손상을 입게 됐다.
그러자 A씨의 유가족들은 B병원의 응급처치를 문제삼았고 이에 B병원은 손해배상소송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향후 병원비를 감면과 1천만원을 지급하는 합의를 제안, 유가족들은 이 합의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B병원의 과실이 심각했으며 합의금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A씨와 가족들은 결국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게 됐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합의를 무효로 처리한 것.
이에 대해 병원측은 이미 합의를 이룬 사항에 대해 다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의료과실의 전후 상황과 유가족들의 처지를 봤을때 병원과 환자의 합의는 환자의 경솔과 무경험 상태에서 이뤄진 불공정 법률행위로 봐야 한다"며 병원이 주장을 기각했다.
반면 재판부는 "환자가 내원당시 검은 변을 동반한 복통을 호소했으므로 이를 위장관 출혈로 판단, 검사와 처치를 시행했다는 불가피성과 자궁내 피임장치를 하고 있어 자궁외 임신을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며 병원의 책임을 50%로 제한, 3억여원의 배상금을 부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