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국립의대 법의학교실이 부검 감정을 의뢰 받고도 2년이 넘도록 부검감정서를 제출하지 않다가 국가권익위원회의 시정권고를 받은 후에야 보고서를 낸 사건이 벌어졌다.
권익위는 이번 사안을 통해 우리나라 검시제도 전반에 큰 문제가 있다고 판단, 제도개선에 착수할 방침이다.
26일 국가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06년 2월 경북 경산시 인근의 한 연못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경산경찰서는 모국립의대 법의학교실에 부검감정을 의뢰했다.
하지만 이 대학 법의학교실은 권익위의 시정권고를 받고서야 의뢰한지 2년이 지난 2008년 4월 비로소 부검감정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이 부검을 의뢰하는 변사자 검시건수가 연간 약 4500여건. 이중 국과수에서 약 3500여건을 부검하고, 나머지는 의대 법의학교실이나 개인병원 등에 의뢰된다.
국과수는 시체부검의 경우 15일, 의료 및 교통사고 사망 부검은 30일, 병리조직검사는 10일 등 처리기한 규정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의대 법의학교실이나 개인병원에 의뢰되는 검시는 처리기간이나 절차규정, 검시관련 법률이 없어 이번 사례처럼 검시결과 통보가 1~2년 지연되기도 한다는 게 권익위의 설명이다.
이로 인해 수사가 종결되지 못해 타살에 의한 범죄 가능성이 확인되더라도 범인의 도피나 증거인멸, 공소시효 등에 상당한 문제로 작용될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문제는 법의관이 턱없이 부족하고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환경이 전혀 갖춰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법의관은 전국에 약 40명. 전국 43개 의대 가운데 법의학교실이 개설된 대학은 11개에 불과하다.
특히 국과수 법의관 1인당 부검건수가 연간 약 300건에 달하지만 2001년부터 현재까지 법의관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부산 국과수 남부분소는 법의관이 단 한명도 없어 검시를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경북대 의학전문대학원 곽정식(법의학교실) 교수는 “법의관들이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근무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하는데 수련을 마치고 나면 갈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과수 법의관의 급여가 일반 의사보다 크게 낮아 법의학 전공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시민 전의원은 17대 국회에서 부검의 자격과 보수규정 등을 담은 검시법안을 제출했지만 회기내 처리하지 못한 채 자동폐기되고 말았다.
곽정식 교수는 “전세계에서 검시법이 없는 나라는 우리 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전문 법의관을 양성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교육 여건, 안정적인 취업 여건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밝혔다.
부검료 인상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부검을 하기 위해서는 부검의와 보조인력, 사진촬영기사, 기록전문가 등 4명이 한 팀을 이뤄야 하는데 부검비는 고작 25만원.
이 비용으로는 인건비와 부검에 필요한 재료, 1회용 가운 구입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전남의대 박종태(법의학교실) 교수는 “대학에서 법의학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런 열악한 사정을 알고도 법의학을 전공하려는 의사가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의대 졸업생들이 외과나 흉부외과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욕할 수 없듯이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어느 정도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권익위는 27일 오전 10시 대한법의학회, 법무부, 대검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열어 검시제도 전반의 문제점과 향후 선진 검시제도의 도입을 위한 법률 제정 등을 논의할 방침이어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