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29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존엄사, 사회적 합의와 제도화'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발제자로 참여한 국립암센터 윤영호 기획실장은 1997년에 있었던 보라매병원사건을 언급하며, 의료현실과 법적 판단사이의 괴리에 대해 소회를 밝혔다.
보라매병원사건은 당시 의료계 안팎에 큰 논란을 일으켰던 사건.
외상에 의한 뇌출혈로 뇌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환자를 두고 가족들이 담당의사의 의학적 권고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퇴원을 요구, 결국 환자가 사망에 이르게 됐던 일로 대법원은 지난 2004년 해당 의사에 대해 살인방조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의사협회 등은 2001년 의사윤리지침을 통해 '회복 불능환자의 진료중단'에 관한 나름의 윤리적 지침을 제시했으나 안락사 허용이라는 사회적 비난을 받았고, 이후 의료계에서는 말기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논의가 사실상 사라지다시피 했었다.
윤영호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존엄사'에 대한 의사로서의 윤리적 고뇌를 솔직히 털어놨다.
그는 "전통적으로 의료인은 환자의 질병을 치유하거나 생명을 연장하며 고통으로부터 환자를 구하는 것이 의사의 도리라고 교육받아 왔다"면서 "때문에 삶의 마지막 순간이라도 치료를 계속해야만 최선을 다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존엄사'를 둘러싼 논란들은 의료인들의 이 같은 전통적인 사고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그는 "죽음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늘어나면서 죽음의 과정에 있는 말기환자에게 생명유지장치들이 삶의 연장이 아니라 오히려 환자의 고통과 죽음을 연장할 뿐이라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면서 "결국 의료현장에 적용되고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존엄사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이 시대의 과제"라고 밝혔다.
윤 교슈는 이를 위해 먼저 우리 고유의 말기환자 지침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임상현장에서 임종환자의 관리를 의사개인의 가치관과 판단에 맞길 것이 아니라 표준적 지침을 통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면서 "여기에는 생명연장과 관련된 의학의 한계를 이해시키고 환자 입장에서 최선이 무엇인지를 객관적으로 설염하는 내용과 절차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중요한 점은 존엄사를 위한 말기 환자의 사전의사결정 및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 아울러 말기 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 경제적 지원제도도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 윤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세계보건기구 및 선진국들은 호스피스완화의료를 말기 암 환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가장 이상적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미국, 일본 등은 이미 동 제도가 정착되거나 호스피스 수가가 만들어져 있다"면서 "경제적 이유로 환자가 치료를 포기하지 않도록 경제적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가 우선 정착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종교, 법률, 사회적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존엄사'는 여전히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날 박용웅 목사는 "기독교에서는 존엄사와 안락사를 동일한 의미로 본다"면서 "존엄사는 정통 기독교 보수신앙에서는 반대입장"이라고 밝혔다.
신현호 변호사 역시 "존엄사법은 만들어져야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 입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면서 "존엄사법 제정은 사회안전망이 완전히 구축되었다고 할 때 시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신 변호사는 "존엄사 문제는 제도개선이나 법률제정 만으로 해결이 되는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건강보험제도의 정비·보장성강화 등 기본적으로 보건의료복지제도의 문제, 호스피스 제도의 정비 등 제도적 정비가 선행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법률제정이 뒤따르는 것이 순리일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