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성 항체 혈우병 환자의 진료비 청구액 가운데 자그마치 2억6천만원의 거액이 삭감됨으로서, 앞으로 제대로 된 진료를 받기 어려워진 네 살 배기 어린 환자가 목숨을 내건 아슬아슬한 사투를 별여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14일 혈우병환우단체인 한국코헴회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5월까지 한 달여간 장중첩증으로 인한 치료을 받고 10억원의 치료비를 청구했던 희귀성 혈우병 환자 박모 군(남, 4세)의 진료비 중 2억6천만원이 최종삭감됐다.
박군은 혈액에 8인자와 9인자 항체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희귀한 혈우병 환자로서, 보다 일반적이고 저렴한 혈우병 치료제인 F제제로는 전혀 효과가 없어 고가의 N제제 처방이 불가피한 경우.
그러나 심평원의 심사기준에는 먼저 F제제를 투여해 보고 안 되면 나중에 N제제를 투여하도록 돼 있어, 박 군은 치료 초기에 효과도 없는 F제제를 투여받아야만 했고 나중에 N제제를 투여해 한 달간의 치료를 마쳤을 때는 치료비중 입원비나 수술비 등을 제외한 약제비 청구액만 10억원에 육박하기에 이르렀다.
이 거액의 청구액에 대한 심사를 놓고 고심하던 심평원은 결국 K병원이 이 약의 투약과정에서 과잉진료를 했다며 이중 2억6천만원을 삭감조치했던 것이다.
심평원측은 이번에 2억6천만원의 삭감 사유로 ▲허용범위를 초과한 용량을 투약한 점 ▲환자의 상태가 안정화된 후에도 계속 투약한 점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코헴회는 이 기준들이 환자 개인이나 상황의 특수성을 무시한 것은 물론이고, 다른 케이스의 심사기준과 엇갈리는 등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먼저 허용범위에 있어서 심평원은 식약청이 정한 체중 1㎏당 6KIU를 2.6KIU 초과했다는 것을 삭감 사유로 들었다.
그러나 박군의 주치의에 따르면 "박군의 경우 수술 직후 위중한 상태에서 기준에 맞는 양을 투약했으나 전혀 효과가 없었고, 나중에 투여량을 늘리고 나서야 효과가 있었다"면서 "최선을 다한 치료가 기준을 초과했다고 해서 삭감이 됐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게다가 1㎏당 6KIU라는 기준이 여러 환자들에게 일관되게 적용되는 심사기준도 아니라는 것이다.
코헴회에 따르면 또 다른 항체 혈우병 환우인 김 모군의 경우 지난해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면서 역시 N제제를 투약했으나 식약청 기준과 전혀 무관한 1㎏당 3.75KIU를 기준으로 삭감해, 총 진료비 5억여원 중 4천여만원이 삭감됐던 사례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 심평원은 박 군의 상태가 안정화된 후 계속 투약한 것을 삭감 사유로 들고 있으나, 코헴회는 직접 의무기록을 확인한 결과 퇴원 당일까지 박군의 혈변, 즉 장출혈이 있었다는 기록을 확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쨋든 이로 인해 2억6천만원이라는 막대한 삭감액은 금액을 청구한 K병원측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지만, 환자측은 병원보다 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최소한의 필요한 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막대한 삭감액이 떨어진 이상, 앞으로 박군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은 사실상 막힌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퇴원후에도 박군은 계속되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는데, 병원으로서는 F제제가 효과가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 이상 고가의 N제제를 투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치료를 하면 할수록 계속 막대한 손해를 각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따라서 병원으로서도 박군에게 필요한 진료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채 최소한의 처치만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 박군은 양쪽 무릎의 연골 부위 출혈로 관절이 굳어져 보행이 어렵게 되는 등 건강이 날로 악화되고 있다.
게다가 항체 혈우병 치료제는 국내에서 한정된 의료기관들만이 취급하고 있으므로 다른 의료기관을 찾는 것도 여의치 않다.
코헴회측은 정당한 의료행위를 관리하기 위한 삭감이 아니라 경제적 비용절감을 위한 심평원의 삭감이 환자를 고통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코헴회 관계자는 "이처럼 심사평가 기준에 일관성이 없는데 누가 심평원의 심사결과를 믿을 수 있겠냐"면서 "의료의 적정성이나 의학적 근거를 부정하는 이런 반인륜적인 삭감의 관행을 타파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박군이 치료를 받은 N제제는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약품가운데 무릎연골치료제 '콘드론'(1회 투여기준 7백70만원)에 이어 두번째로 비싼 약으로서 240KIU들이 1병 가격이 6백4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