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늦은 저녁 건강보험공단과 의약단체가 내년 상대가치 점수당 단가를 60.7원에 계약했다. 이번 수가계약 체결은 2000년 국민건강보험법이 발효된지 5년만에 사상 처음으로 자율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인상률에 있어서 마의 2%벽을 넘어섰다는 점도 성과중 하나다. 건강보험제도를 둘러싼 갈등의 벽을 일부 허무는 덤도 얻었다. 공단과 의약단체가 공동성명을 통해 '건강보험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할만 하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가협상을 한꺼풀 뒤집어 보면 개운치 않은 구석이 적지 않다. 우선 공단과 의약단체가 합의한 공동연구 결과가 무시된 점이다. 3억9천500만원에 이르는 거액을 들여 수행한 공동연구를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협상에서 배제된 점은 두고 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재정운영소위 소속 노동 시민단체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공단도 대표성의 문제를 드러냈다.
수가계약을 체결하면서 마련한 부대합의서도 공단에 당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2008년까지 80% 수준이 될 수 있도록 공동노력하기로 합의함으로써 향후 수가 현실화보다는 보장성 강화가 우선이라는 점을 인정한 셈이 됐다. 앞으로 수가인상을 둘러싼 논의에서 의약단체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 분명하다. 건강보험 재정이 올해 1조5천억원의 흑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내년 수가인상율이 3.5%에 그친 것은, 1조2천억원을 보장성 강화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또 2007년부터 요양급여비용을 요양기관 특성을 고려한 유형별환산지수로 계약하기로 한 점도 개운치 않다. 현재 수가계약은 의약5단체로 구성된 요양급여비용협의회와 건강보험공단의 합의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유형별 환산지수로 전환할 경우 종별 계약체체로 계약 체결 구도가 바뀐다. 공단은 협상의 주도권을 잡고 의협, 병협 등 단체를 각개격파할 수 있다. 또 종별계약은 총액계약제로 가는 길목이기도 해서 더욱 우려된다.
이런 우려들이 단순한 기우로 그칠 수 있다. 하지만, 그간 수가협상 과정이나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정책들에 비추어 보면, 가볍게 넘길 일은 절대 아니다. 의약단체들은 앞으로 부대합의가 미칠 영향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대응책 마련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