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의 가족들이 병원을 상대로 환자인 어머니(75세)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그 가족들이 다시 헌법재판소에 국가가 ‘존엄사’와 관련된 법률을 제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소원(입법 부작위 확인 소송)을 냈다.
환자의 가족들은 헌법소원 청구서에서 “식물인간 상태인 어머니의 존엄사를 요청했으나 병원이 관련 법률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며 “존엄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지 않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환자의 자기결정권, 재산권, 보건권 등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의학적으로 회생 불가능한 환자를 첨단 의료장비에 의지하여 억지로 연명하는 것이 환자 본인이나 그 가족, 의료진, 그리고 사회 전체적으로 타당한지에 관한 사회적 논쟁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보라매 병원 사건을 계기로 불필요한 연명치료 중단과 관련된 법제화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2004년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대법원은 환자의 보호자가 의사의 의학적 권고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요하는 환자의 퇴원을 강청하자, 담당 전문의와 주치의가 치료중단 및 퇴원을 허용함으로써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안에서, 담당 전문의와 주치의를 살인방조죄로 처벌한 원심을 확정하였다.
위 사건 이후에 환자의 치료중단 요구나 의학적 필요에 의한 치료중단이 필요한 경우에 의료법에 의한 의료심사조정위원회에서 그에 대한 심의·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하였으나, 결국 입법화되지는 못하였다.
그에 따라 의료계는 규범과 현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놓여 있다. 비록 환자측의 치료 중단 요구가 위법하다고 하더라도, 의사로서는 그 요청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반면, 그 환자나 그 보호자측의 치료중단 요구를 거부할 경우, 환자측의 반발과 치료비 부담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이다.
아마 이번에 환자의 가족들이 병원을 상대로 치료중단을 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측이 그 요구를 거부한 이유는 의학적인 이유보다는 형사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환자측과 의료인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에 따라, 환자측이나 의료인들은 모두 잠재적인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
존엄사 합법화에 관한 법률 제정은 환자측과 의료진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매우 시급한 사안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존엄사 합법화에 관한 논의가 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공식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결정 내용에 따라 존엄사의 허용 여부에 관한 기본적인 방향이 정해질 수는 있겠지만,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입법 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그 결정이 있기 전이라도 존엄사 합법화에 관한 입법 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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