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의사의 진료행위가 요양급여기준에 구속되는가’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 보험공단은 한정된 재원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최적의 요양급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준이 필요하고, 의사도 그 기준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의사들은 환자에 대한 관계에서 최선의 진료를 해야 할 의무가 있고, 요양급여기준은 그러한 최선의 진료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쟁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만약 의사가 요양급여기준에 따라 진료를 했는데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의사와 보험공단 중에 누가 의료사고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부담해야 할까?
보험공단의 주장대로 의사가 요양급여기준에 구속된다면, 의사가 아닌 보험공단이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반면 요양급여기준보다 의사의 판단이 우선된다면, 요양급여기준에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의사는 면책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 아직 그에 관한 직접적인 판례는 없으나, 이미 미국에는 유사한 판례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1986년 캘리포니아주에서 있었던 ‘위클린 대 캘리포니아’ 사건이다.
위클린은 ‘메디캘’이라는 캘리포니아 보험공단에 가입한 환자로 동맥경화증에 대한 수술을 받은 후 합병증에 대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처음 메디캘은 10일간의 입원을 허락하였다. 그 후 치료 담당 의사는 8일간의 추가적인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고, 메디캘에 그렇게 알려 주었다. 의사의 의견을 검토한 메디캘은 4일간의 추가 입원만 허락하였고, 이에 대해서 담당 의사는 더 이상 항의하지 않았다. 결국, 의사는 4일간만 추가 입원을 시키고 환자를 퇴원시켰다.
그런데, 위클린은 퇴원 후 곧 괴사가 발생하여 다리를 절단하여야 했다. 그 후 위클린은 의사가 아닌 보험공단인 메디캘을 상대로 입원치료의 거부로 다리의 괴사가 발생하여 다리를 절단하였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위 소송에서 치료 담당 의사는 환자가 만약 좀더 입원치료를 받았더라면 다리의 절단을 피할 수도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위 사건에서 하급심 재판부는 환자의 주장을 받아들였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보험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보험자의 요양급여 제한 조치는 관련 기준에 따라 정당하게 이루어졌고 담당주치의로부터 어떠한 이의 제기를 당한 바 없으며 환자에 대한 의학적인 결정에 관여한 바가 없기 때문에, 보험자는 책임이 없고, 의사가 의학적 판단으로 보험자가 부당한 제한을 가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에 항의하지 않았다면, 결국 의사가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즉, 보험자가 의학적 판단에 반하여 부당하게 보험급여를 제한할 경우, 의사는 그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보험자에게 항의를 해야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책임이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위 미국 판례에 따르면, 위 질문에 대한 답은 ‘의사’이다. 타당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보험자는 보험재정의 안정을 위하여 보험급여의 범위를 제한할 수 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우선할 수는 없다.
의사는 환자에 대해서 최선의 진료를 해야 하고, 그에 반하는 보험급여기준에 구속되지 않는다. 만약, 요양급여기준이 의학적으로 부당하면, 당연히 의사는 보험자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이 되지 않으면 의학적 판단에 따라 진료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보험공단이나 보건복지부는 의사는 요양급여기준에 구속되어 진료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요양급여기준이 의학적으로 부당하다면, 시정절차를 거치거나 보건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얻은 후에 진료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의료행위란 요양급여기준과 같은 획일적 기준이나 행정권력에 의해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위하여 의학적 수준에 미달하는 요양급여기준만 계속 강요하는 것은, 보건복지부와 보험공단의 직무 유기이다. 건강보험의 최우선 목표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고, 건강보험 재정 안정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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