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견례는 달랐다. 전 세계에 불어닥친 경제위기 때문일까. 그간의 극한 대립속에서 나타난 회의감 때문일까.
병원노사 모두가 공격적인 어투를 버리고 한발씩 양보했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한 뒤 주장을 펴는 협상의 모습이 보여졌다.
보건의료사용자협의회와 보건의료노조가 산별교섭을 위해 처음만난 21일 공군회관에는 고성을 찾기 힘들었고 오히려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노조의 변화였다. 늘상 상견례는 물론, 산별교섭내내 갈등을 일으키던 C노무법인 심모 노무사가 올해도 교섭대표로 참가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지적하지 않았다.
다만 다음번 교섭에는 심모 노무사의 참여를 재고해주기를 바란다는 당부의 말만 전했을 뿐이었다.
심모 노무사의 참여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 상견례 도중 수차례 정회가 됐던 과거와는 분명 달라진 모습이다.
나순자 노조위원장은 "과거 산별교섭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용자측이나 노조나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노조는 요구하고 사측은 버티는 구조가 지속되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거에는 임금인상 하나의 안건만으로 산별교섭이 마무리된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에는 좋은 분위기속에서 건보개혁 등 노사의 공통분모에 대해 논의하는 건설적인 교섭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노조측에서 이같은 모습을 보이자 사용자측도 분위기가 온화해져갔다. 과거 노조의 요구를 우선 반발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교섭이 막바지에 이를때까지 갈등을 빚었던 사용자대표 구성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점은 분명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이성식 중소병원협의회 대표(소화아동병원)는 "사실 사용자대표를 맡을 경우 그 병원이 집중타격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지 않냐"며 "그러니 누가 대표를 맡으려 하겠느냐"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하지만 올해는 교섭에 임하는 노조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 분명히 느껴진다"며 "이러한 분위기라면 오는 20일 개최되는 회의를 통해 사용자대표단을 꾸리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이렇듯 부드러운 분위기로 상견례가 마무리되다 보니 노사 양측 모두 올해 산별교섭은 큰 무리없이 잘 풀릴 것 같다며 희망적인 분위기다.
사용자단체 관계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분위기가 너무 좋아 안심했다"며 "이제서야 진정한 협상을 위한 기틀이 마련되어 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노조 관계자도 "굳이 소모적인 논쟁을 펴지 않아도 충분히 대화로 서로간의 의견을 교환하며 교섭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며 "앞으로의 교섭도 순조롭게 풀려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보건의료노사는 앞으로 매주 화요일 2시 교섭을 진행하기로 우선 합의했으며 다음주 28일 2차교섭을 갖고 추후 교섭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