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조만간 존엄사 인정 여부를 판결할 예정인 가운데 서울대병원이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지 여부를 환자 본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이는 현행법상 의료기관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없지만 환자의 선택권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서울대병원은 최근 의료윤리위원회(위원장 오병희 부원장)에서 ‘말기 암환자의 심폐소생술 및 연명치료 여부에 대한 사전의료지시서’를 공식 통과시켰다.
또 혈액종양내과는 말기 암 환자들에게 사전의료지시서 작성을 추천하기로 15일 결정했다.
서울대병원 의료윤리위원회를 통과한 사전의료지시서(advance directives)에는 연명치료로서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치료를 받을 것인지에 대한 말기 암환자 본인의 선택을 명시도록 했다. 이는 환자가 특정인을 대리인으로 지정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서울대병원 내과(과장 박영배 교수)는 얼마전 의료윤리집담회(Ethics Grand Round)를 처음으로 개최해 연명치료 중단과 관련해 윤리적 문제가 제기됐던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이경권 변호사, 김옥주(의료윤리), 함봉진(신경정신과) 교수가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그동안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료현장의 판단에 의해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연명치료 중단에 대해 서울대병원이 의료계를 대표해 적극적인 의사표명을 시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2007년 1년간 서울대병원에서 암으로 사망한 656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말기암 환자중 123명(15%)에서 무의미한 심폐소생술이 실시되고 있었다.
한편, 현행법상으로는 보호받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436명(85%)의 말기 암 환자에서는 심폐소생술을 가족들이 거부했고, 이를 의료진이 받아 들여 연명치료 중단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 외에도 말기 암환자에서 임종전 2개월 이내에 중환자실을 이용한 경우가 30%, 인공호흡기를 사용한 경우가 24%, 투석을 시행한 경우가 9%로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진료현장에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다.
허대석 교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환자의 권리문제에 대해 의료계가 적극적인 의견을 표명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면서 “말기 암환자들이 제도의 미비로 인해 불필요한 연명치료에 의한 고통을 받는 일이 감소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난 2월 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임종 과정에서 인공호흡기를 적용했다면 기계적인 생명연장이 일정기간 가능했지만 자연스러운 죽음을 선택했다.
한편,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도록 항소심에서 인정받은 연세대병원 환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21일로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