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와 외과 등 일부 표시과목을 중심으로 신규 개원시 전문과목을 숨기거나, 기존의 표시과목 간판을 ㅇㅇ과 의원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는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이 같은 선택에 이를 수 밖에 없었던 전문의들은 적지 않은 마음 고생을 겪는다.
16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원장 송재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현재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은 지난 연말(4655개소)보다 112개소 가량 늘어난 4767개소로 집계됐다.
과목별로는 가정의학과 명의로 개설된 과목 미표시 의원이 1515개소로 전체의 31.8%를 차지했으며, 외과가 1032개소로 21.6%, 산부인과 536개소 11.2%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 3개 과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미표시 의원의 70% 이상으로 결국 이들 과목에서 미표시 의원의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부인과·외과 등 간판 전환 가속화…"답답한 현실 돌파구"
특히 이 가운데서도 산부인과와 외과에서의 개원형태 변화가 눈길을 끈다.
산부인과와 외과를 표방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나, 이들 과목 전문의 면허소지자 명의로 개설된 일반의원, 이른바 미표시 의원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
실제 표시과목 기준으로 보면 올해 상반기에만 외과 15곳, 산부인과 22곳이 줄어들었으나 반대로 같은 기간 외과 면허소지자가 명의로 개설된 일반의원은 24곳, 산과 전문의가 대표자로 개설한 일반의원은 28곳이 늘었다.
미표시로 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사례만큼이나, ㅇㅇ외과 혹은 ㅇㅇ산부인과로 의원을 운영하던 중 간판을 바꿔다는 사례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1차기관 의료전달체계 수문장…수가 현실화 등 정책지원 시급"
이에 대해 해당과목 전문의들은 생존을 위한 최후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외과개원의협의회 관계자는 "수가가 안맞다 보니 외과 개원의들이 다른 환자를 받지 않으면 병원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최근에는 간단한 수술마저 일부 대형화된 병원들이 독점하면서 수술 건이 더욱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실적인 한계로 인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라지만, 마음의 상처는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간판 전환을 결정하면서 가장 크게 상처받는 부분은 전문가로서의 자존심"이라면서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도 자괴감을 떨쳐내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해당 과목 전문가들은 미표시 현상의 가속화가 시장의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시급한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외과개원의 협의회 관계자는 "수가의 비현실성이 가장 큰 문제로 이대로 둔다면 더 많은 외과전문의가 외과 개원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면서 "의원에 종사하는 외과 전문의들이 1차 의료, 다시말해 수문장의 역할을 제대로 있게 하기 위해서는 수가 현실화 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