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한해 농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출발부터 전망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건보공단 쪽에서 건강보험 재정 문제를 들면서 원하는 만큼의 수가 인상이 어렵다며 선수 치고 나섰다. 실제 건보공단은 최근 임시재정운영위원회에서 내년 건강보험 재정은 2조7000억의 당기적자가 예상된다고 보고했다. 16일 건보공단 이사장은 의약단체장들과 만남에서 "충분한 수가를 보장해주고 싶지만 보험재정의 한도가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년 건강보험 재정이 어렵다고 수가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생각은 곤란하다.
건보공단은 의약직능 가운데 현재 가장 어려운 직능이 어디인지를 파악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어느 쪽을 더 올려줘야 하고 어느 쪽은 조정해야 하는지 답은 이미 나와 있는 셈이다. 설사 건보재정이 적자가 날 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수가인상은 어렵다고 하면 갈등을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또한 건강보험 재정이 왜 적자인지 그 원인이 밝혀진 마당이다. 건강보험 재정난은 국고지원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는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정부는 그동안 건강보험 재정이 흑자를 이용해 보장성 강화에 주력해 왔다. 지난해 1조3667억 흑자를 기록하자 향후 5년간 3.1조원이 소요되는 보장성 확대계획을 올해 발표했다. 지난 4~5년간 이런 기조는 계속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공급자단체도 생각해야 한다. 특히 그동안 수가협상에서 번번이 '물먹은' 의과의 사정을 살펴야 한다. 곳곳에서 폐업을 하고 진료과목 간 영역이 사라지고 비급여 진료가 갈수록 성행하는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보장성 강화가 국민을 위한 일이듯 적정한 수가 인상은 국민들이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전후사정을 따지지도 않고 재정난만 들먹이는 수법은 낡은 방법이다. 재정이 흑자였을 때는 뭐했느냐는 질문에 궁색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