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허대석(서울대병원 교수) 원장이 근거중심의 임상진료지침 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허대석 원장은 보건의료연구원이 발행하는 ‘근거와 가치’ 12월호 CEO 칼럼을 통해 진료현장에서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임상진료지침을 제정할 것을 제안했다.
허 원장은 칼럼에서 “가족 한 사람이 암 같은 중병에 걸렸다면 누구든지 그 질환을 치유할 수 있는 최고의 의료진을 찾아 병원을 선택할 것”이라면서 “많은 사람들은 수도권의 대형병원에서 치료받기를 원하고 실제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과연 이러한 선택이 환자를 위한 최선일까?”라면서 “집 근처에 있는 병원에서도 같은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 있고, 결과의 차이가 없다면 경제적, 시간적 낭비와 무의미한 노력만 한 셈”이라고 환기시켰다.
임상진료지침을 통해 어느 병원에서나 일정 수준의 질이 보장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국민의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정책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2007년 의료법 개정안에 임상진료지침을 포함시킬 계획이었지만 의사단체들이 의료행위를 규격화할 우려가 있고, 국가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내세우며 강력히 반발하면서 무산된 바 있다.
허대석 원장은 “그 결과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임상진료지침이 없는 상태에서 건강보험급여기준이 진료현장의 의료행위를 좌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데도 진료현장에서 수용되지 못하는 모순점을 의료계가 임상진료지침을 통해 지적하고 개선책을 요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해로 인해 지침의 긍정적인 기능을 살리지 못하고 있음에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그는 임상진료지침이 의료의 질에 대한 보장성 강화를 통해 국민이 최적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의학적 근거의 평가가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많은 의학 정보 중 근거를 선택하고 평가하는 과정이 공정해야 하며, 체계적 문헌고찰이나 널리 인정받는 지침의 개작수용(adaptation)을 통해 지침의 근간이 정리되고, 새로운 연구결과를 지속적으로 수용해 일정 간격으로 개정해야 표준지침이 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이와 함께 그는 “제정된 임상진료지침은 진료현장에서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면서 “특정단체가 임상진료지침을 제작하고 발표해도 실제 현장에서 수용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을 공정하게 반영하고 사회적 합의를 담을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지침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허대석 원장은 영국의 NICE(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and Clinical Excellence), 미국의 AHRQ(Agency for Healthcare Research and Quality) 등의 공공기관에서 진료지침 제정, 지침 개발을 위한 근거 평가 등의 책임을 맡고 있다는 점도 설명했다.
허 원장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임상진료지침이 의료제도의 일환으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근거중심 보건의료의 구현을 위해 설립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NICE나 AHRQ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이해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