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산부인과 김모 원장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찾아온 여고생에게 낙태시술을 해줬다. 김 원장은 보호자까지 동반, 울면서 낙태를 호소하는 여고생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일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여고생의 어머니인 줄만 알았던 보호자는 알고보니 여고생 남자친구의 어머니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뒤늦게 자신의 딸이 낙태한 사실을 알게 된 여고생의 아버지는 남자친구 측에 돈을 요구하며 낙태죄로 고소한 것이다. 그 대상에는 낙태시술을 한 김 원장도 포함됐고, 그는 결국 면허취소 처분을 받았다.
B산부인과 이모 원장은 약혼자의 아이를 임신한 여성에게 낙태시술을 해줬다. 결혼을 코앞에 두고 약혼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낙태를 선택한 것이다. 이 원장은 이미 깊은 슬픔에 빠져 있는 여성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남자 측의 가족들은 그녀와 의사를 낙태죄로 고소했다. 그나마 그 여성이 약혼자를 잃은 충격에 의한 계류유산으로 정리되면서 기소유예 처분으로 마무리됐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는 최근 모 로펌에 접수된 불법낙태 관련 사건이다.
최근 낙태근절운동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지만 낙태 시술을 하는 의사들의 인간적인 고민은 배제돼 있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새어나오고 있다.
일부 돈벌이 수단으로 낙태전문 산부인과가 있다고 하지만 상당수 산부인과 개원의들은 환자의 요구를 무작정 거부할 수만은 없다는 게 산과 개원의들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 경우 그에 따른 처벌은 낙태를 요구한 사람이 아닌 이를시술한 의사에게 가장 가혹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의사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로 많은 산부인과 개원의들은 낙태시술을 두고 시시각각 불법과 합법을 오가며 갈등하고 있다.
A산부인과 김모 원장은 "낙태와 관련, 낙태 시술을 요구한 산모 보다 이를 시술한 의사에 대해 처벌을 강력히 함으로써 줄이고 있기 때문에 의사들은 면허증을 내놓고 진료에 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환자들이 울면서 찾아오는데 환자를 눈앞에 두고 모른 척하기란 쉽지 않다"며 "그렇지만 낙태시술을 했다가 고소 및 고발되면 면허취소라는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 고 한숨을 지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당수 산부인과 개원의들은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할 것인지, 환자의 요구를 수용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B산부인과 개원의는 "태아를 살려낼 것인지, 한시가 급한 환자의 마음을 달래줄 것인지 늘 갈등한다"며 "최근 일단 중단했지만 이에 대한 고민은 이어질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정부는 사회적인 환경도 만들어 놓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낙태시술에 대한 산부인과 의사의 처벌만 규정해놨다"며 "한편에서 볼 때 환자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의사들은 선의의 피해자라고 볼 수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적으로 따져볼 때 '태아도 생명권을 지닌다'와 '사람은 법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법의 효력이 인정된다'라는 가치가 충돌한다"며 "당장 의사면허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