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의료과실로 인해 환자가 사망했다 하더라도 의학교과서에 있는 일반적인 의학지식으로는 이를 막을 수 없었다면 의사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재판장 양승태)는 최근 중심정맥관을 제거하면서 트렌델렌버스 자세를 취하지 않아 결국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한 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의학교과서 등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의학지식을 넘어선 부분까지 주의의무를 적용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16일 판결문에 따르면 의사 A씨는 환자의 중심정맥관을 제거하면서 환자의 신체를 수평으로 유지하면서 머리를 낮추는 트렌델렌버그 자세를 취하지 않아 결국 사망에 이르게한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1심 재판부와 고등법원은 환자의 중심정맥관을 제거한 후 바로 출혈이 있었다면 흉강내 음압이 형성되는 공기색전증으로 단정할 수 없으며 환자에게 숨을 참도록 지시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없다며 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검사는 트렌델렌버그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공기색전증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주의의무를 게을리 해 결국 환자가 사망한 것이라며 다시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대한의사협회에 감정촉탁 결과 의학교과서에는 중심정맥관 제거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며 "다만 외국의 임상지침서 증례보고에만 중심정맥관 제거시 트렌델렌버그 자세를 취하고 환자에게 숨을 참도록 지시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원해서 업무를 보고 있는 피고 의사가 의학교과서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을 넘어 증례보고까지 숙지해야 한다는 것은 과도한 요구"라며 "따라서 외국의 증례보고를 근거로 의사가 공기색전증 발생 가능성을 예측했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유없다"고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의사의 과실로 환자가 사망한 것은 분명하다고 못박았다.
재판부는 "공기색전증의 경우 흉강 내에 음압이 형성되는 동안에는 혈액이 외부로 유출되거나 출혈이 발생하지 않지만 이는 숨을 들이쉬는 동안에만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며 "따라서 중심정맥관 제거부위에 출혈이 있었던 것을 근거로 환자가 공기색전증으로 인해 사망한 것이 아니라는 원심의 판단은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환자가 중심정맥관을 제거한 직후 정신을 잃고 맥박이 없는 채로 2시간 만에 사망에 이른 점과 공기색전증 외에 이와 같은 증상이 발생할 만한 원인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점을 미루어 보면 환자는 공기색전증으로 사망했다는 것은 충분히 증명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하지만 앞서 본 것과 같이 의사에게 과도한 주의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과실이 있더라도 죄를 물을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