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개설자가 아닌 봉직의가 다른 병원에서 진료하는 것은 위법이 아니며 해당 진료비를 삭감하는 것 역시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1부(부장판사 오석준)는 최근 논산시가 심평원을 상대로 청구한 보험급여비용삭감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논산시는 2006년 1월 시립노인전문병원을 개원한 후 의료법인인 B병원에 시립병원 운영과 재산, 장비를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B병원 의사 O씨는 뇌경색, 치매 등 노인성질환자들을 입원치료한 후 시립병원으로 전원 시킨 후에도 시립병원에서 일부 입원환자 진료를 계속해 왔다.
그러자 심평원은 2008년 세 차례에 걸쳐 O씨가 시립병원에서 진료한 환자의 요양급여비용 1500여만원을 삭감했다.
논산시는 이에 불복해 건강보험분쟁조정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했지만 기각됐다.
의료인은 해당 의료기관에서 의료행위를 해야 하는데 B병원 의사가 시립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진료한 것은 의료법 제33조 1항, 제39조 2항 위반에 해당된다는 게 기각 사유였다.
의료법 제33조 1항에 따르면 의료인은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않고는 의료업을 할 수 없다. 다만 환자나 환자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진료한 경우 예외를 인정한다.
의료법 제39조(시설 등의 공동이용) 2항은 의료기관의 장은 해당 병원의 환자를 진료하는데 필요한 경우 병원에 소속되지 않은 의료인에게 진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심평원은 “의료법은 원칙적으로 자기가 개설한 의료기관에서만 진료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의료법 제39조 2항이 규정한 ‘환자를 진료하는데 필요한 경우’를 가급적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삭감의 정당성을 피력했다.
B병원 의사가 시립병원에서 진료할 때에는 부득이하거나 일시적이어야 하는데 계속적, 주기적으로 시립병원에서 진료하면 사실상 전속된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게 심평원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논산시는 “의료법 제33조 1항은 의료인이 자신의 의료기관 밖에서 진료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는 개설자에게 부과하는 의무일 뿐 고용의사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와 함께 논산시는 “설사 고용의사가 이 규정의 적용 대상자라고 하더라도 의료법 제33조 1항에 따라 환자나 보호자의 요청이 있으면 의료기관 밖에서도 진료를 할 수 있다”고 환기 시켰다.
B병원 의사 O씨는 시립병원장의 요구에 따라 전원환자에 한해 진료했기 때문에 의료법 제39조 2항에 따른 적법한 행위라는 주장도 폈다.
서울행정법원도 논산시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은 “의료법 제33조는 의료기관의 개설자, 경영자가 아닌 고용의사들에게 당연히 적용되는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법원은 “만약 고용의사까지 의료법 제33조를 적용하면 제39조가 허용하고자 하는 의료기관간 시설 공동이용과 의료인간의 협진, 초빙 방식의 의료시술을 부당하게 제한할 수 있어 입법 취지에 반한다”고 못 박았다.
복지부가 지난해 12월 의료법 제33조에 대해 유권해석을 변경한 사실도 이번 사건 심리 과정에서 드러났다.
당시 복지부는 ‘의료기관 개설자가 아닌 의료인이 소속된 의료기관 이외에서 진료하는 것은 의료법 제33조 1항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복지부는 그간 의료법 제33조에 대한 유권해석을 통해 의료인의 복수의료기관 근무를 통제해 왔는데 이로 인해 의료법 제39조와의 모순 및 충돌을 야기한다는 점을 새로운 유권해석이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법원은 “의료법 제39조 2항도 환자 진료에 필요하면 타 의료기관 소속 의료인에게 진료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할 뿐 특별히 ‘부득이’하거나 ‘일시적으로’ 제한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했다.
의료인의 소속 불분명과 관련해 야기될 수 있는 의료행정상 어려움이 있다면 이는 다른 법률상, 행정상 보완장치를 마련해 해결할 수 있는데 심평원이 무리하게 해석해야 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법원은 “시립병원장이 B병원 의사 O씨에게 자신이 치료하다가 시립병원으로 전원 온 환자들을 계속 치료하도록 한 행위를 의료법 위반으로 판단, 요양급여비용을 삭감한 처분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논산시 소송대리인인 현두륜(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순회진료가 위법이 아니며, 관련 진료비를 삭감할 수 없다는 첫 번째 판례라는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