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고령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노인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국내 요양기관들은 몸살을 앓고 있다. 시설이 열악한 요양병원들이 장기요양보험제도 실시 후 요양시설과 환자 유치경쟁에 나서면서 환자이송, 전달체계는 무너진지 오래며 이를 막기 위한 정부의 각종 규제들로 우수한 요양병원들까지 망가지는 기형적 형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에 노인의료의 롤모델로 꼽히는 일본을 직접 찾아 선진 노인의료의 현실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 진화의 결정체 노인의료-복지 복합체
(2) 한국은 있고, 일본은 없는 두가지 (3) 제도와 현실의 괴리 겉도는 요양병원
(4) 공격적 변화만이 유일한 생존책
입원환자의 70%를 자택으로 돌려보내지만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구축하고 있는 일본의 복합체와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한국의 요양병원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
전문가들은 상생체제와 경쟁체제의 차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공생하는 일본…경쟁하는 한국
대한요양병원협회 김덕진 회장은 4일 "요양병원들이 비어있는 병상을 가동하기 위해 본인부담금을 받지 않으며 요양시설과 환자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즉, 환자유치를 위해 덤핑을 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탓에 일본과 같은 급성기-요양병원-요양시설간 원활한 환자 진료체계는 꿈같은 이야기가 되고 있다.
더욱이 요양병원과 요양시설간 환자 분류가 되지 않으면서 의학적 처치가 필요한 환자들이 시설에 방치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즉,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이 서로를 공생의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경쟁 상대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들이다.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서로를 보완하지 못하는 따로국밥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기능 재정립보다 대대적인 실사와 수가 불이익 등 손쉬운 칼날을 들이대며 질관리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일부 요양병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병원들은 큰 태풍을 맞고 있다. 일당정액수가제와 인력차등제가 시행되면서 시설과 경쟁하며 근근히 생명을 연장했던 병원들이 고사 직전에 놓인 것이다.
이로 인해 일본이 나아갔던 방향처럼 복합체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보바스기념병원, 희연병원 등 일부가 병원과 시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복합체로 변화하면서 상당한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다.
김덕진 회장은 "노인요양병원을 둘러싼 경영환경이 급변하면서 질 낮은 병원들은 모두가 정리될 상황에 놓였다"며 "일본의 요양병원들이 위기를 어떻게 넘겼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노인의료에 대한 체계적인 제도정비가 부족해 환자들이 이중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며 "이것이 모든 인프라의 중심에 환자를 생각하는 일본 노인의료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요양병원 엇갈린 시각…갈피 못잡는 노인의료
하지만 대다수 국내 요양병원들은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수가가 3~4배나 차이나는 구조속에서 비교가 말이 되냐는 것이다.
A요양병원 원장은 "수가 자체가 몇배나 차이나는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며 "한국의 요양병원들도 일본 정도의 수가를 준다면 충분히 그 정도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당정액수가, 입원료 차등제 등 각종 규제 일변도로 요양병원을 꽁꽁 묶어놓고 최선의 서비스를 다하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정부의 시각은 다소 다르다. 질이 낮은 요양병원들까지 모두 먹고 살 수 있게 해줄 필요가 있겠냐는 의견이다.
충분한 의료인력을 갖춘 우수한 요양병원들을 가려내고 그들을 집중적으로 키워 요양병원의 역할을 정립해 나가겠다는 것이 정부의 의도.
최근 도입된 의료인력 차등수가제도 이와 같은 선상에 있다. 의사와 간호사를 많이 뽑아 인프라를 갖출수록 수가로 이를 보전해주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에 대해 요양병원들도 할말이 많다. 과연 의료인만 많다고 좋은 병원이냐는 반발이다.
B요양병원 원장은 "어떤 의사를 데려다놓던지 머리수만 채우면 수가가 가산되는 제도로 요양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정부의 착각"이라며 "이미 이같은 방법은 적정성평가 등을 통해 정책 실패로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심평원이 시행한 2008년 요양병원 적정성평가에서 1등급 요양병원 가운데 간호등급 1등급 기관은 20.2%에 불과했고, 오히려 2등급과 3등급이 각각 44.7%, 27.2%로 더 많았다.
적정성평가 2등급인 요양병원 중에서도 간호 1등급인 곳은 17.6%에 지나지 않은 반면 간호 2등급이 44.4%, 간호 3등급이 27.5%를 차지했다.
상식적으로 간호등급이 높을수록 적정성평가에서 좋은 등급을 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전혀 딴판인 셈이다.
합리적인 제도개선 머리 맞대고 고민해야
이에 따라 상당수 전문가들은 단순히 숫자에 집착하기 보다는 보다 나은 노인의료를 위한 시스템, 즉 제도를 개선하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요양병상을 확보하기 위해 수가를 가산해주다가 공급 과잉을 해결하기 위해 수가 불이익을 주는 식의 단순한 대응으로는 일본이 경험한 치명적인 실패를 답습할 뿐이라는 것이다.
대한노인병원협회 김덕진 회장은 "이미 일본이 잘못된 정부정책으로 병상 수급조절에 실패하면서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는 상황을 보지 않았냐"며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 흘러간다면 한국도 그같은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이제는 정부와 요양병원 나아가 요양시설까지 머리를 맞대고 한국 노인의료의 큰 틀을 다시 짜야한다는 의견이다.
김덕진 회장은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정부와 요양병원, 요양시설이 머리를 맞대고 건강보험과 장기노인요양보험 나아가 국내 노인의료의 큰 틀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금이라도 정부는 요양병상의 지역별 수급조절과 요양병원-시설의 역할 정립에 노력해야 한다"며 "아울러 요양병원들도 서비스 질관리를 기초로 보다 적극적인 서비스 경쟁에 돌입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