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협 고우림 부회장(연세대 원주의대 의학과 2학년)
|연세대 원주의대 의학과 2학년 고우림| 지난달 초 전국적으로 대학교 개강일자 변경을 공지 할 즈음, 필자는 다른 학교들의 개강 연기소식을 학교 열람실에서 접했다. 얼마 남지 않은 혈액학 시험을 위해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하던 와중, 갑자기 추가된 2주 방학에 기뻐하는 타과 친구들의 환호성을 듣고 있자니 그 모습이 대비돼 괜히 마음이 심란해졌다. 뭐 어쩌겠는가? 의과대학 특유의 짧은 방학은 이미 적응했다.
의대생이라고 해서 특별히 면역력이 더 뛰어나지는 않을 터, 곳곳에서 개강 연기 소식이 들려옴에도 여전히 임상 실습을 포함한 학사일정을 강행하는 대다수의 의과대학들을 보며 의문을 가진 채 어느새 2월 중순이 지나고 있었다.
그 후 코로나 19 (COVID-19)의 확산 및 지역사회 감염이 가속화 되고, 확진자 수가 급격히 증가한 2월 24일경을 기점으로 많은 의과대학들이 학사 일정 조정에 들어갔다. 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 (이하 의대협)의 '코로나 19 사태에 따른 각 대학별 대응 현황 자체 조사'에 따르면 개강 후에 본과 과목 수업 및 실습을 중단한 단위는 총 28단위이다. (미응답 5단위 제외)
문제는 아직까지 대다수의 학교에서는 장기적인 휴교에 따른 대책 마련이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하 KAMC)는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온라인 강의 등 수업 대체 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물론 필자의 학교를 비롯해 빠르게 온라인 강의 체제를 도입해 학생들의 교육권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학교도 있지만, 전체학생대표자총회 대의원 대상으로 실시한 의대협 내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3월 2일 기준으로 비대면 원격 수업 진행에 있어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응답한 단위는 4단위에 그쳤다. 특히 임상 실습의 경우, 원격 수업의 한계를 보완하는 적절한 대책을 내놓은 학교는 없는 실정이다.
유례없는 휴교에 따른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학생들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해 있다. 줄어든 여름방학, 틀어진 시험 일정, 채우지 못하는 출석 일수에 따른 졸업 요건 미충족, 기존 학사 일정변경으로 발생할 각종 불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크기를 더해간다. 이에 따라 한편에선 대책 없는 무기한 휴교 대신 차라리 수업을 강행하는 것이 낫겠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모두가 불안하고 상황을 의심스러워할 때에는 확실한 대책 마련과 명확한 공지,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 혼란을 최소해야 한다. 하지만 그와는 상반된 조치를 취하는 학교들에 대한 제보가 페이스북 익명 커뮤니티, 협회 메일, 그리고 개인적인 연락을 통해 들어왔다.
그 내용은 학사 일정 변경 기간 동안 코로나 19 발생 지역 또는 국가 방문으로 발생하는 모든 불이익은 학생이 감수, 학교가 위치한 지역을 벗어나지 말라는 권고 및 벗어난 후 감염 시 제적을 포함한 중징계,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의 대면 출석 요구 등이다.
물론, 학생들의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규제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런 일방적인 권고는 그 필요성을 떠나, 학생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조치가 될 수도 있다.
너무나 안타깝다. 감염은 단순히 개인 건강의 악화를 넘어 학생 본인의 제적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에 더더욱 공포스러우며, 결국 의대생은 성적에 악영향을 받는 것이 두려워 수업 강행을 원하게 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코로나 19 감염 위험 보다 더 두려운 것이 유급이고, 당장 다가올 시험인데. 어쩌면 의대생들은 안전 불감증을 가장 위험한 곳에서 느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렇게 의과대학생들의 건강과 안위가 위험에 놓인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9년 12월부터 2020년 1월 사이 의대협 교육국에서 시행된 제2차 임상실습 실태조사에 따르면 약 60% 가량의 응답자가 학교로부터 임상실습 전 예방 접종에 대한 적절한 비용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각 학교별 통계로 자세히 살펴보니 40개 의과대학 중 9개 의과대학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의대생들은 병마와 지극히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들의 건강과 권리에 대한 보호는 등한시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 건강의 최소 보장을 위해서는 학교와 학생 모두가 '함께' 해결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이런 일의 반복을 방지하기 위한 공론화 기구의 필요성이 더욱 더 절실해 지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