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이하 의정연)의 대선 후보 공약 평가 발표회가 시작 30분 전 돌연 연기됐다. 이번 대선은 의료계 반발이 심한 공약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에 의정연의 평가를 기다리던 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의정연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자 일각에선 "평가 내용에서 오류가 발견됐을 것"이라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부터, "정치권의 압박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에 가까운 추측까지 나오기도 했다.
의사협회 관계자가 밝힌 실상은 이렇다. 발표회 당일인 지난 15일이 선거운동 시작일이기 때문에 공직선거법 위배소지가 있어 일정이 연기됐다는 것.
선거운동 기간 중 표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문서 등을 배부·게시하는 것은 공직선거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각 정당 후보의 공약을 평가한 의정연 연구를 공표하는 것에 제동이 걸렸다는 설명이다.
각계 전문가가 두 달을 매달려 내놓은 결과물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의정연의 발표회 일정 선택에 있어 단순히 착오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공직선거법에 위배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의정연은 근시일 내에 발표회를 재개하겠다는 입장이다. 의료정책연구소 우봉식 소장은 "외적인 요인 때문에 발표회가 연기됐으며 관련 문제가 해결되면 곧바로 발표회를 재개할 것"이라며 "본 연구소의 공약 평가는 공직선거법에 허용되는 범위"라고 답했다.
다만 선거관리위원회가 의정연의 발표를 당초 계획대로 허가할지는 미지수다. 선관위 관계자는 "특정 단체·연구소의 공약 평가 공표에 제동이 걸린 것은 내용에 수정이 필요해 내려지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공직선거법 108조 3항은 특정 후보에 유·불리한 평가단을 구성·운영하거나, 후보에 순위·등급을 정하는 평가를 금지하고 있는데 의정연의 연구가 여기 위배됐을 수 있다는 것. 만약 의정연 공약 평가 발표회가 재개된다고 해도 기존 내용이 일부 수정될 수 있다는 의미다.
간호법 제정, 공공의료 확충,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등 의료계 반발이 심한 공약이 대거 등장해 의정연 평가에 관심이 쏠린 상황에서, 잘못된 일정 선택으로 발표가 무산되거나 일부 내용이 제외되는 것을 납득할 이들이 얼마나 될까.
의정연은 발표회 일정을 잡고 각계 이목을 끌기 전에 제반사항을 먼저 점검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의정연은 지난해 12월 의료계 3인, 학계 3인, 소비자·환자단체 2인, 언론 3인 등 각계 전문가 11인이 평가위원으로 참여한 '보건의료 매니페스토 평가단'을 조직했다. 평가단은 각 정당 대선후보들의 보건의료분야 공약이 단순히 표심을 노린 '포퓰리즘'인지, 아니면 이행 가능성이 높고 예산이 확보된 '매니페스토' 공약인지를 가려냈다.
의정연과 선관위의 협의가 원만히 이뤄져 각 정당 후보 공약에 대한 객관적·합리적 판단 근거자료가 공개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