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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난에 세계학회 취소하는 의학회들 "국제적 망신거리"

발행날짜: 2014-12-15 12:05:44

규제 강화·후원 감소에 공 넘겨…"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

|초점 = 공정경쟁규약의 그늘|

국내 의학회들이 몇 년간 공을 들여 세계 학회 유치에 나서고도 재정난으로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에 이를 양보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 한숨을 자아내고 있다.

국내 의학의 위상을 높이는 것은 물론 수천명의 방한으로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도 규제 강화와 후원 감소를 견디지 못하고 이를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학회 유치 줄줄이 포기 "도저히 타산 안맞는다"

A학회는 최근 세계 학회 총회에서 1순위로 개최국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사회 막판에 이를 고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2009년부터 세계 학회 유치에 나서 두번이나 고배를 마신 끝에 겨우 유치를 확정지을 단계까지 왔지만 공정경쟁규약 등으로 국내 환경이 급변하면서 도저히 개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A학회 이사장은 14일 "2009년만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의지와 여력이 충분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지 않았느냐"며 "대충 주판을 두들겨봐도 도저히 타산을 맞출 수가 없다는 판단이 들어 막판에 개최를 고사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수년간 고대했던 일인데 어떻게 안타깝지 않겠느냐"며 "하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으니 어떻게 하겠냐"고 덧붙였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A학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학회들도 같은 이유로 세계 학회 유치를 고사하거나 포기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제약사 등 후원업체들도 세계학회 지원에 적극적이지 않는데다 공정경쟁규약으로 학회 잉여금 관리가 불가능해지면서 재정 마련에 어려움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B학회가 대표적인 경우다. B학회는 아시아·태평양 학회 이사회로가 직접 차기 아태 학회 개최를 제의했지만 수차례 논의 끝에 이를 고사해 일본으로 개최국이 넘어갔다.

B학회 이사장은 "몇 년전 세계 학회를 개최하면서 재정적으로 너무 힘들었다"며 "그 적자폭을 아직도 메우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아태 학회 개최를 제의 받고 비용은 검토한 결과 최소 20억원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다"며 "지금으로서는 10억원도 만들기 힘든 상태"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이 학회는 학술대회 대행업체를 빼고 직접 학회를 준비하는 방안까지 고민했지만 도저히 타산이 맞지 않아 결국 포기를 선택했다. 대형 제약사들조차 고개를 저었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사방팔방 후원을 받을 곳을 물색했지만 대부분이 난색을 표했다"며 "사실 돈이 없어 학회 임원들이 직접 접수 받는 것도, 이를 하지 못해 세계 학회를 포기하는 것도 국제적 망신 거리 아니냐"고 반문했다.

제약사 후원 소극적…비상경영체제도 한 몫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후원 감소다. 공정경쟁규약이 도입된 이후 제약사 후원이 어려워진데다 최근 리베이트 단속 등으로 분위기가 안좋아지면서 지갑을 아예 닫았기 때문이다.

B학회 이사장은 "과거 1980년대만 해도 아태 학회만 유치해도 업체에서 1억원 이상씩 후원이 들어왔다"며 "이러한 후원 없이 국제 학회 개최는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특히나 과거에는 학회 임원들이 후원 유치에 직접 나섰지만 지금은 공연히 구설수에 오르기 쉽상"이라며 "누가 총대를 매고 제약사를 노크하겠냐"고 강조했다.

또한 세계 학회에 대한 정부의 인식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대다수 학회들이 공정경쟁규약을 피해가기 위해 국제 학회를 표방하면서 정부도 후원을 줄이고 있는 것이다.

A학회 이사장은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한국관광공사, 학술재단 등에 도움을 요청해 봤지만 불과 몇 백만원 후원해 줄 수 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며 "세계 학회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크게 바뀐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특히 많은 학회들이 공정경쟁규약 때문에 국제 학회를 표방하면서 여기에 정부 후원금이 상당히 많이 빠져나간 것도 사실"이라며 "이로 인해 정부도 국제 학회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대학병원들이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가는 등 의료계를 둘러싼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것도 영향을 주고 있다. 교수들이 학회에 힘을 쏟을 수가 없는 환경에 있는 셈이다.

학회 임원을 맡고 있는 C대학병원 부원장은 "사실 학회 임원들이 대부분 대학병원의 중추들 아니겠냐"며 "병원에서 진료와 연구 실적으로 계속해서 압박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학회일에 그리 열정적으로 나설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아울러 "결국 돈도 없고 사람도 없다는 것이 지금 학회가 처한 현실"이라며 "세계 학회는 커녕 국내 학회를 유지하는데도 버거운 곳이 많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