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난에 허덕이는 대한의사협회가 조직 슬림화와 임직원의 급여, 퇴직금 중 일부를 지급 보류하는 비상 조치를 단행했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내부 반발 기류에 휩싸이고 있다.
1년 예산만 270억원에 달하는 의협 조직이 급여 보류로 변통할 수 있는 금액이 한달에 고작 2천만원에 불과해 사실상 "상징적인 재정 개혁으로 직원들의 사기를 꺾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최근 의협이 내부 조직, 재정 개혁 카드를 꺼내들면서 조직 내부에서 추무진표 개혁에 대한 반발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앞서 의협은 "회비가 하반기에 집중 수납되는 관계로 전반기에는 항상 자금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긴급 비상대책으로 임직원의 동의를 받아 급여 일부 및 퇴직금 지급을 유보하고 운용자금을 확보하는 비상조치를 시행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의협은 "아울러 지속적인 회비 납부율 저하에 따른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조직 슬림화와 상근 및 반상근 임원 최소화, 법인카드 관리 강화, 신규직원 채용 중단 등의 지출 절감 노력을 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금운영이 심각한 실정이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임직원의 급여, 퇴직금 중 일부를 지급 보류하는 비상 조치가 재정 절감의 차원이 아니라 협회의 어려움을 공감하자는 상징적인 차원에서 진행됐다는 점이다.
이는 의협이 비상조치로 '변통'할 수 있는 총 액수를 살펴보면 쉽게 납득이 간다.
회장, 상근부회장, 반상근 임원의 급여 보류 비율은 40%. 회장과 상근임원(1명)이 1천만원, 반상근 임원(2명)이 500만원 안팎의 월급을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급여 보류액은 다합쳐 고작 1100만원에 그친다.
국장급 5명(사무총장 포함)에 대해서도 40%의 월급 보류가 단행됐지만 절감액은 800만원 수준에 그친다.
6월부터는 18명의 비상근 이사의 활동비마저 20% 보류될 전망지만 그마저도 실효성은 떨어진다. 비상근의 활동비 50만원에서 20%를 제외해 봤자 보류액은 한 사람당 10만원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번 비상조치로 월급 보류 총액은 2000만원 정도에 불과한 셈. 게다가 이는 재정 절감액이 아닌 단순히 지급 보류된 사안이기 때문에 재정 절감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의협 내부의 지적이다.
조직 슬림화 역시 기존의 7국 1실 25팀 조직을 4국 15팀으로 '다운사이징'을 했다고 공표했지만 인원은 그대로 놔둔 사실상 대외 공표용의 조직 개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의협이 일년 예산만 270억원을 쓰는 '공룡'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련의 조치들은 '돈'맥경화를 풀기위한 조치가 아니라 그저 생색내기용이었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재정 안정화의 방안으로 거론한 회비-면허신고 연계 방안 검토도 회원들의 민심에 불을 지르긴 마찬가지.
의협 관계자는 "협회장이 나서서 월급을 보류하겠다고 하는데 누가 거역을 하겠냐"며 "협회 임직원은 그저 열심히 일하고 있을 뿐인데 월급에 손을 대는 것은 역효과만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39대 때는 임직원이 모두 단합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얼마 안돼 사기 저하를 겪고 있다"며 "대다수 이사들은 희생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협회에 들어왔지 돈을 위해 들어온 게 아닌데도 마치 개혁의 대상이 된 것처럼 비춰져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모 비상근 이사는 "50만원에 불과한 활동비에서도 일부 금액을 지급 보류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고작 10만원 정도를 지급 보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반감을 드러냈다.
최근 의협이 세 명의 계약직 직원을 해촉하거나 해촉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직원들 내부에서도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
모 직원은 "이달 월급이 보류될 수 있다거나 계약직은 더 이상 계약하지 않는다는 소리도 들린다"며 "직원들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왜 이런 상황이 됐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회무의 평가 잣대가 회비 납부율이라는 점에서 회비 납부율 하락의 준엄한 평가는 회장이 짊어져야 한다는 것. 회원들이 납득할 만한 회무가 바로 회비 납부율 상승의 지름길이라는 소리다.
반면 추무진 회장의 비상 조치를 개혁의 시발점으로 봐 달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의협 관계자는 "추무진 회장이 협회 임직원의 정신무장을 위해 스스로 일련의 자극제를 만든 것이다"며 "지방 출장에도 KTX 일반석만 고집할 정도로 근검절약하는 추 회장이 파산 직전의 의협을 살리기 위해 솔선수범을 하는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추 회장은 재정 절감의 시발점으로 별도의 취임식 개최 대신 정기총회에서 취임식을 개최하고, 회비 납부 독려를 위한 병원장 면담과 법인카드 단속까지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