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위암을 전공하겠다고 나선 여의사가 있었다. 모두가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릴 때 그는 당당히 수술방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로부터 몇년 뒤 그는 유수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위암의 대가 노성훈 교수의 수제자가 됐고 나아가 삼성서울병원 교수로 부임하며 자신의 길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사연의 주인공은 바로 삼성서울병원 위암센터 안지영 교수. 국내에서 처음으로 위암을 전공한 여의사이자 국내 첫 위암 분야 여교수다.
"모두가 말렸던 위암 분야…하지만 꿋꿋히 걸어가니 길이 찾아왔다"
그렇게 한국 의료계에 새 역사를 써온 그이기에 궁금한 점이 많았다. 먼저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게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기대했지만 대답은 간결했다.
"하고 싶었으니까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더 이유가 필요한가요?"
실제로 그는 의대 시절부터 외과의사. 즉 서전을 꿈꿔왔다. 그렇기에 전공의 선택할때도 그의 앞에는 두개의 선택지만이 있었다. 외과와 흉부외과다.
"환자와 가족 모두가 어두운 얼굴로 병원에 들어와 내가 메스를 대고 나면 웃으며 다시 행복해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로 그 행복을 포기할 수는 없었죠."
하지만 주위의 시선은 그의 이러한 의지와는 관계없이 흘러갔다. 동기들은 물론이고 선후배 전공의들, 외과 교수들은 물론 다른 과목 교수들까지 모두가 만류했다.
서로 다른 말을 꺼내놓아도 결론은 같았다. 여성이 무슨 위암 수술을 하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전국을 수소문해봐도 위암 수술을 하는 여의사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 또한 고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수술방이 가득 찰 만큼 엄청난 출혈을 본 순간에는 어지러움을 느껴 수술방을 뛰쳐 나가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도 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길이 없다면 만들자고 생각했다. 이유가 오로지 여자이기 때문이라면 그 이유를 생각하지 못할 만큼 실력을 쌓겠다고 다짐했다.
수술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연구에 올인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같은 시기다.
그러한 그의 의지에 하늘이 화답한 것일까.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그의 논문에 흥미를 느낀 위암의 대가 세브란스암병원 노성훈 원장이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제 논문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셨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가의 밑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어요. 그 덕에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죠."
그렇게 수술방에 입성한 이후 그는 두각을 나타내며 자신의 실력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섬세함을 바탕으로 로봇수술에서 그는 자신의 빛을 발했다.
하지만 시련도 함께 찾아왔다. 실력은 인정받았지만 사회적 편견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젊은 여의사에게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환자들이 진료실에 들어오면 여의사. 특히 나이어린 여의사가 앉아 있는 것에 많이 불편해 하셨어요. 심지어 나이를 묻는 분들도 많았구요. 하지만 지금은 그 환자들이 가족에 친지까지 모두 모시고 와요. 이제 신뢰가 쌓인거죠."
환자들이 늘어가고 실력이 점점 더 좋아지면서 안 교수는 스타 의사가 됐다. 학회에서도 사실상 유일한 여교수다 보니 더 주목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삼성서울병원이 그녀를 영입한 것도 같은 이유다.
드문 여교수인데다 수술 실력은 물론 로봇수술까지 삼박자를 갖춘 그를 삼성서울병원은 주목했고 삼고초려 끝에 영입에 성공했다.
그는 삼성서울병원에서 또 다른 시작을 준비중이다. 아직 로봇수술이 활성화되지 않은 만큼 이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그의 목표다.
또한 급격하게 늘고 있는 여의사들의 멘토도 그의 몫이다. 그들이 따뜻하고 실력있는 의사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쏟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함께 일하는 펠로우 4명 중 3명이 여의사에요. 그들이 특유의 섬세함으로 실력있는 외과의사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교수는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금녀의 벽은 스스로 만드는 것…두려워 말고 자신의 길을 가라"
이렇게 성공한 여의사로 이름을 날리면서 그는 이제 여의사들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그만큼 그에게 진로를 묻고 상당하는 후배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인턴부터 전공의, 심지어 의과대학 학생들까지 상담을 많이 해오는게 사실이에요. 고민은 많지만 줄기는 하나죠. 여의사인데 서전을 해도 되겠느냐는 거에요."
그러한 질문에 그가 답하는 말도 한가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의사가 된 보람을 느낄수 있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사실 진료과목의 흥망성쇄가 있기는 하지만 그걸 어떻게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나요. 그러한 생각으로 진로를 결정하면 상실감만 생길 뿐이에요. 내가 하고 싶은걸 하면 자연스레 길이 열릴 거라고 믿습니다."
특히 그는 오랜 시간 쌓여온 외과의 이미지가 아쉽다고 말한다. 남성적이고 힘든 일이라는 인식이 여의사들의 진입을 더욱 막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러한 인식을 바꾸는데도 노력하고 있다. 여성의 섬세함이 실력이 될 수 있는 분야이니 만큼 자신있게 발을 들여놓는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모델을 보여주고 싶은 것도 같은 이유다.
더욱이 '여풍'이라고 불릴만큼 여의사들이 많아지고 있는 시점에 이러한 편견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배출되는 의사의 절반은 이제 여의사에요. 이제 의사라면 성별을 떼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시점이 왔다는 거죠. 실력과 열정, 환자를 위하는 마음만 있으면 여의사들이 진출하지 못할 분야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또한 여성이기에 지금의 환경에 아쉬운 부분은 있다. 여성으로서 대우나 특혜를 바라지는 않지만 특수성은 인정하는 분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혼이나 출산, 육아 등의 문제를 단지 '여성'이라는 틀로만 보지 말고 '가족'이라는 프레임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반문.
"수련을 받을때 병원의 거의 모든 외과계열 여의사들이 유산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너무나 놀란 적이 있어요. 임산부를 배려하는 것을 여의사에 대한 특권으로 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세브란스병원 재직 시절 노성훈 원장을 찾아가 임신한 여의사를 위해 수술방에 간이 휴게실 마련을 요구한 것도 이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남자 의사들은 1인 1사물함을 주고 여의사에게는 간호사와 사물함을 같이 쓰게 하는 부분도 바로잡았다. 상식적인 방안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정한 길을 한걸음씩 걸어가며 국내 첫 위암 분야 여의사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 그의 길을 이제는 후배들이 또 한걸음씩 따라가며 길을 다지는 중이다.
"의사는 실력이 전부에요. 실력앞에 성별은 무의미하죠. 그만큼 후배들이 자신을 믿고 꿋꿋히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자연스레 자신의 길이 열리고 보람이 찾아올꺼라고 믿어요. 환자들은 남성이냐 여성이냐보다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잘 치료해주는 '의사'를 원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