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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보다 지식인으로 치열했던 10년이었다"

발행날짜: 2016-01-22 05:05:50

유용상 전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흔쾌히 사퇴한다. 할만큼 했다."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 건으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마당에 그가 발을 뺐다. 비난을 해야 할까, 박수를 쳐야 할까.

2006년부터 2016년까지 꼬박 10년을 달려온 그로서도 아쉬움이 있을 법한데 사퇴의 변은 깔끔하다 못해 허무하다.

"50점 짜리." 할만큼 했다는데 본인의 입에서 나온 점수는 야박했다. 세월의 값어치가 그 정도에 불과할까. 소아청소년과 원장으로 돌아간 전 의사협회 산하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유용상 위원장을 만났다.

"의사? 지식인으로서 치열했던 10년"

궁금했다. 중요한 시기에 왜 그만뒀을까. 단서는 '지식인'이라는 단어다.

"지식인은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과학적, 이성적 신념과 철학에 따라 사회의 부조리를 지적하고 고발해야 진정한 지식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할만큼 했습니다."

수 년간 그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한 적을 본 기억이 없다. 유용상 전 위원장의 입버릇이 된 '지식인'이라는 단어는 그를 설명하는 유일한 지표. 그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나라는 이념적인 지식인만 있을 뿐 사회 비판적인 지식인의 계보는 사실상 끊겼습니다. 이것이 선진국과의 차이죠. 아무도 한의학이 가진 병폐에 대해 입을 여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회적인 책무감 때문이었을까. 2005년 '허준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으로 한의학의 실체를 고찰한 이후 그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대한방 토론회 주자로 나서는가 하면 한의학의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중국 내 거장 교수(장궁야오(張功耀))를 초청해 지속적으로 여론을 달궜다.

사이비 의학과의 전쟁을 선포한 과학중심의학연구원의 창립, 대한방 칼럼과 기고문에는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았다.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협상과 투쟁, 투 트랙의 의협 집행부로서는 한특위의 강경한 원칙론이 때론 버거웠던 게 사실. 한의계로부터의 고소, 고발전도 어깨의 힘을 뺐다. 지식인으로서의 책무가 벽에 막혔다고 절망할 때마다 사의를 표했지만 의료계의 만류를 뿌리치진 못했다.

최근 그는 한특위 주도로 번역, 출간한 '한의학에 작별을 고하다'라는 서적을 통해 '허위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이나 '한의약 국제화 붐의 냉철한 사고', '한의학의 유효성' 등 예민한 주제를 직시했다.

판매 부수는 총 7500부. 대학 인문학 서적의 평균 인쇄 부수가 초판 200부에서 많아도 1000부를 넘지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름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지식인도 해결 못한 돈 문제…"후학 양성이 숙제"

끊임없는 고발이 작은 반향을 일으켰다. 유용상 전 위원장은 "불과 15년 전만해도 음양오행이나 경락이라는 말로 한의계가 공격하면 의사들이 한 마디도 못했던 게 사실이다"며 "하지만 지금은 이론적 무장이 어느 정도 됐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고 강조했다.

성명서와 보도자료, 칼럼, 기고문을 통해 의사 회원들이 각성됐다는 게 그의 판단. 후학들의 이론적 무장이 그의 사퇴를 이끌었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저의 사퇴로 새로운 단합의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의계도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공세의 수위를 높이는 것도 의료계 단결의 트리거(trigger)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식인의 숙명일까. 치열했던 그 역시 돈 앞에선 작아졌다.

그는 "과학중심의학연구원이 출범해서 사이비 의료를 비판하는 컨텐츠를 생산하고 있지만 운영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며 "후원 회원 1000명의 목표를 아직도 달성치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의사회 학술대회나 정기총회장에서 회원들을 설득해도 생각만큼 연구원 후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었다는 게 그의 하소연.

유용상 전 위원장은 "과학중심의학연구원이 한의학과 현대의학을 포함해 사이비 의학을 지적할 수 있는 단체로 성장해 나가야 한다"며 "이제 소아청소년과 원장으로 돌아갔지만 후원자를 모집하는 일에는 계속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뭇매를 맞았던 한의사에 대해 미안한 감정은 없을까. 유 전 위원장은 "한의사들은 날 괴물로 볼 수 있지만 실제로 본인을 아는 한의사들은 나를 다른 이미지로 기억한다"며 "대한방 활동으로 생긴 강성의 이미지는 사실 인간 유용상의 이미지가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개인적으로 한의사에 대한 추호의 악감정은 없었고 직접 한의사를 공격한 적도 없다"며 "다만 현대사회에 걸맞는 새로운 지평을 열기위해 학문으로서의 한의학을 비판해 왔다"고 강조했다.

최근 그는 서적 판매로 모은 인세를 한방대책위원회와 과학중심의학연구원에 기증하며 사임 인사를 갈음했다. 또 국민 건강을 위해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저지해야 한다는 의료계 대응방안 기고글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에게 드리는 서신문까지 곁들였다. "할만큼 했다"는 말이 허투가 아닌 셈이다.

본인이 평가한 10년간의 성적표는 야박했다. 향후 10년을 내다봤기 때문이다.

"한의학의 병폐를 알리려고 했던 개인적인 노력에는 80점을 주고 싶지만 한특위 위원장으로서의 점수는 50점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의-한의계의 갈등이 현재 진행형이니까요. 하지만 모든 일은 순리대로 풀릴 것으로 믿습니다. 저보다 더 훌륭한 지식인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데 희망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