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TV 코메디 프로그램 소재에나 쓰일 황당한 일이 내시경 소독 수가 산정 작업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 달에 20만원이 드는 소독액 구입 비용을 외면하고 정부가 소독 수가로 건 당 2000원을 책정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0원의 소독 수가 중 30%인 600원이 소독액 구입 가격으로 책정됐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한 달에 333건 이상(600원x333건)을 하는 의원만 소독액 구입 비용을 '보전' 받는다. 나머지 의원은 고스란히 소독액 비용을 날리게 된다.
이는 최근 연달아 터진 주사기 재활용 문제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일회용 치료재료비 개선으로 맞대응한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의료계는 일회용 치료재료 재활용은 비윤리적인 행위임을 전제하면서도 재활용이 일어났던 근저에 비현실적인 재료비 및 수가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정부가 쉬쉬하고 있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퐁퐁으로 내시경을 소독할까요?
다나의원에서 발생한 집단 C형간염 환자 발생 사태를 계기로 위장내시경학회가 다시 한번 '적정 소독 수가'의 중요성을 공론화한다는 계획이다.
한달 20만원이 소요되는 소독액 비용을 외면하고 건당 2000원의 소독 수가를 산정하는 것이야 말로 정부가 의사들의 비윤리적 행위를 조장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13일 대한위장내시경학회는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제27회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하고 2차 상대가치 개정에서의 소독 수가 현황을 알렸다.
김용범 회장은 "2차 상대가치 개정안을 보면 내시경 소독 수가가 건당 1900원에서 2000원 정도로 잡힐 것 같다"며 "문제는 한달에 내시경을 한 건 하든, 백 건을 하든 소독액 구입 비용은 20만원에 달한다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정도 소독 수가를 책정하는 것은 내시경을 물로 씻으라는 말과 다를 게 없다"며 "퐁퐁과 같은 주방용 세제로 세척을 한다고 해도 2000원 이상의 부대 비용이 발생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내시경 자동소독기는 내시경 소독 건 수와 상관없이 정기적으로 운영을 해야 한다. 특히 소독기에 주입하는 소독액은 개봉 후 15일 후면 교환해야 한다. 15일 마다 소독액 두 통(10만원)이 소요되기 때문에 한 달이면 소독액 비용만 20만원이 나온다. 검진기관 평가 대상 기관은 이 비용을 구입 증빙 자료로 제출까지 하고 있다.
더 황당한 것은 2000원의 소독 수가 중 30%인 600원이 소독액 구입 비용으로 책정됐다는 점. 한 달 333건 이상의 내시경을 하는 병의원만 그나마 소독 수가로 소독액 구입 비용 정도만 보전할 수 있다.
이명희 이사장은 "다나의원 사태 이후로 소독의 중요성이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적정 소독 수가를 인정해야 하고, 그보다 앞서 소독액 구입 비용을 보전해 주는 것이 국민의 보장성 강화와 안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는 인식을 정부가 가져줬으면 하는 바램이다"고 덧붙였다.
김용범 회장은 "소화기내시경학회가 인건비와 세척기 감가상각비, 솔 등 재료비 등을 고려해 1만 7860원의 소독 수가를 산출해 냈다"며 "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6400원 정도를 소독 원가로 산출했다"고 우려했다.
그는 "거기에서 관행 수가라는 이유를 들어 2000원만 지급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며 "내시경 자체의 수가도 원가의 70% 수준인데 거기에 소독 수가마저 원가 이하로 준다고 하면 철저한 소독에 신경 쓰기란 쉽지 않다"고 우려했다.
그는 "내시경을 많이 하지 않는 의원의 경우 15일이라는 소독액 교체 주기를 늘리려는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다"며 "의료계의 주장은 의사들이 이익을 보자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질 관리, 안전 관리를 위한 제반 비용을 정부가 인정하고 보전을 해달라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의협은 일회용 치료재료 관련 개선을 위해 치료재료비와 수가의 관련성 조사에 들어간 바 있다.
실제로 의협 보험국이 조사한 내용을 보면 침생검(심부-장기-편측)의 수가는 6만 1810원이고 이 금액 중 바늘(Needle, Boipsy, Kidney)에 할당된 수가는 9210원이지만 실제 일회용 바늘은 약 3만 135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의료기관이 바늘을 사용한 행위를 시행하면 약 2만 2140원의 손해(3만 1350 - 9210원)의 손실을 보게 된다는 소리다.
문제는 일부 행위에서는 수가 대비 치료재료비의 비중이 100%를 넘어 200%에 근접하는 사례가 수 십여건에 달하고 있다는 점. 의료기관에서는 해당 행위를 차라리 안하는 것이 경역 수익에 도움이 된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의협은 일회용 치료재료 비용이 수가에 전액 반영될 수 있도록 의료행위 수가를 개선하거나 의료행위 수가와 별도로 일회용 치료재료 비용을 산정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