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 창간 13주년 기념 정책토론회|
의료분쟁조정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개정은 환자권리구제라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환자전원 및 의사들의 방어진료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메디칼타임즈와 서울대병원이 공동 주최한 '의료분쟁법 자동개시, 의료계 퇴보인가 진전인가' 정책 토론회에 참석자 200여명 중 설문조사에 응한 96명의 답변을 분석한 결과다.
이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 이후 의료계 우려와 관련 의사 및 간호사, 병원행정직, 환자 및 보호자 등 관계자의 의견을 직접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의료분쟁조정법, 환자 권리구제 의미 있어"
의료분쟁법은 논란이 많은 법 개정이었지만 이로 인해 환자의 권리를 높여줬다는데 의미를 많이 부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분쟁 조정 자동개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0%(39명)가 '환자의 권리구제'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의료계 퇴보'라는 답변은 31%(30명)로 뒤를 이었으며 '의료계 진전'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25%(24명)로 가장 낮았다.
심지어 의사 응답자 24명 중 '의료계 퇴보'라는 응답은 9명으로 '환자 권리구제'에 의미가 있다고 답한 12명보다 적었다. 일부(3명)에 그쳤지만 '의료계 진전'이라고 바라보는 시각도 있었다.
"중환자 진료 기피 현실화 되나"
하지만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은 의료계 상당한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의료계 우려는 고스란히 설문에서도 드러났다.
법 개정 이후 중환자가 병원에 내원했을 때 다른 의료기관으로 전원조치할 의향을 묻는 질문에 무응답자 43%(42명)를 제외한 응답자 57%(54명)의 상당수가 '환자를 전원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응답자 54명 중 72%(39명)가 환자전원 의향을 묻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답변은 28%에 그쳤다.
질문에 답한 의사, 간호사, 병원행정 등 종사자들은 불필요한 의료분쟁을 피하기 위해 환자를 전원조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을 시사했다.
특히 응답자 상당수는 의료진의 진료위축의 현실화에 대한 우려감이 팽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으로 가장 우려되는 점을 묻는 질문(중복응답)에 '방어진료'를 꼽은 응답자가 48%(48명)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뒤를 이어 '의료소송 증가' 12%, '근거를 만들기 위한 진단검사비 증가' 12%로 집계됐으며 '의료배상책임 보험료 증가'는 6%, '외과계 전공의 지원 감소는 6%로 일부에 그쳤다.
기타 답변으로 5가지 모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이 8%, 무응답을 포함한 모두 영향이 없다는 답변도 8%가 나왔다.
하지만 한국환자단체연합 안기종 대표는 이같은 우려를 일축했다.
안 대표는 "개정된 의료분쟁법은 의료사고 경중과 상관없이 조정이 자동개시되는 제도가 아닌 사망 또는 극히 일부의 중상해 의료사고에만 적용된다"며 "사망이나 중상해 환자가 폭발적으로 조정신청을 할 것이라는 주장은 성급한 추측"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소비자원을 통해 분쟁조정 신청을 하면 똑같이 자동으로 개시되지만 그렇다고 의사들이 중증질환자를 기피하거나 방어진료를 하고 있지 않다"고 일침했다.
응답자 절반 "의료계 반발 당연"
또한 의료계 중 가장 타격이 큰 분야로는 단연 중환자실, 외과계, 응급실에서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의료분쟁법 자동개시 이후 가장 영향을 받을 진료분야를 묻는 질문(중복응답)에 중환자실이 31%(33명), 외과계 28%(30명), 응급실 25%(27명)으로 유사하게 높았으며 내과계는 5%(6명)에 불과했다.
기타 응답으로 모든 진료과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응답도 10%(12명)나왔으며 영향을 없을 것이라는 답변도 2%(3명)있었다.
주목할 점은 의료분쟁 조정 자동개시에 대해 의료계 반발이 거센 것과 관련해서 응답자의 53%(51명)가 '반발이 당연하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이어 '반발이 과하지만 걱정된다'라는 응답 또한 12%(12명)를 차지했다.
즉, 응답자의 상당수가 의료계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공감하고 있거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부작용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는 얘기다. '반발이 과하다'라는 답변은 28%(27명)를 차지했다.
"조정신청, 허위사실 검증 필요"
그렇다면 의료분쟁조정법 하위법령 제정 과정에서 반드시 보완해야하는 점은 무엇일까.
의료인이 조정신청을 거부할 수 있는 이의신청 범위에 포함해야할 점을 묻는 질문(중복응답)에 41%(39명)이 '허위사실로 조정신청'이라고 답했다.
'진료방해'는 16%(15명), 의료진 폭행 16%(15명), 영장없는 자료제출 3%(3명)순으로 나타났다. 기타 의견으로 '질병 경과에 따른 사망'과 '퇴원거부'를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와 함께 추가 의견으로 의료분쟁 조정에 직접 참석해야하는 것에 부담을 호소하기도 했다. 대리인 출석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법정에 서는 것 자체가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는 대안으로 조정절차에서 직접 출석이 아닌 서면답변 및 서면대체 절차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날 정책 토론회에 참석한 한 의료진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으로 자칫 의료인 진료위축 및 의료기관의 환자전원 현상으로 이어지지 않길 바란다"라면서 "이를 위해선 하위법령 제정 과정에서 보완해야할 점이 많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