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캡 점안제에 대한 식약처의 안전성 서한 배포 이후에도 재사용 실태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허가사항 변경 이후 식약처의 관리실태와 제약사가 주장하는 해법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상> 약사법상 당연한 리캡 점안제 퇴출…당국만 모르쇠
<하> 1회용 점안제 재사용 실태조사 "소비자는 모른다"
"점안제는 개봉한 후 1회만 즉시 사용하고 남은 액과 용기는 바로 버려야 한다." -2015년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
"식약처가 허가사항 변경에도 불구하고 다회 사용이 가능한 고용량 제품 시판을 여전히 허가하고 있다." -2016년 10월 국정감사
국내에서 1회용으로 허가받은 점안제는 과연 1회용이 맞을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다회 사용이 가능한 리캡(Re-Cap) 용기 점안제에 대해 용법 용량 및 사용상 주의사항을 마련하고도 정작 사후관리에는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식약처가 지속된 고용량 리캡 점안제 출시와 관련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서 제약사들은 여전히 '수익성' 등을 이유로 기존 용기를 고집하고 있는 상황.
여기에 경제성을 이유로 한 환자들의 점안제 재사용 관행이 고착화되면서 2015년 식약처의 점안제 허가사항 변경 이후 근 1년간 재사용 실태가 바뀐 게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약사법으로 알아본 리캡 논란 원인은?
국내 제약사들이 리캡 용기를 1회용 점안제로서 이미 시판허가를 받은 마당에 리캡 용기 점안제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대한민국약전, 미국약전, 유럽약전 등 각국 의약품 공정서는 점안제의 무균성 보장을 위해 특수용기가 아닌 다회용 점안제에는 보존제를 넣도록 하고 있다.
반면 보존제가 없는 1회용 점안제는 일반적으로 '밀봉 용기'를 사용토록 돼 있다. 리캡 용기도 밀봉 용기이므로 무보존제 1회용 점안제로서 시판허가를 받은 것.
문제는 개봉 이후 발생한다. 한번 개봉된 리캡 용기는 무균성은 커녕 기밀도 유지할 수 없지만 리캡 구조와 고용량이라는 이유로 소비자들은 이를 다회 사용이 가능한 제품으로 인식하게 된다.
식약처가 1회용 점안제의 재사용을 염두에 두고 리캡 제품을 시판허가해 준 것은 아니지만 그저 '밀봉 용기'면 된다는 허점은 여전히 존재하는 셈이다.
리캡 용기는 약사법 제62조에도 위반된다. 약사법 제62조 제10호는 용기나 포장이 그 의약품의 사용 방법을 오인케 할 염려가 있는 의약품의 제조 등을 금지하고 있다.
리캡 용기는 고용량이며 다시 뚜껑을 닫을 수 있는 구조기 때문에 소비자들로 하여금 사용방법을 오인케 한다. 리캡 용기의 구조적 형태가 1회용 점안제의 재사용을 유도하거나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CMIT/MIT 함유 치약은 회수…리캡 용기는?
국내에서 처음 허가받은 점안제는 1회용 점안제는 논 리캡(Non Re-Cap) 제품이었다. 제품 용기 자체가 한번 개봉 이후 다시 봉인할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에 환자들 역시 한번 사용 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 국내 제약사들은 소비자의 편의성을 내세워 앞다퉈 리캡 제품을 출시했다. 리캡 제품은 고용량으로 제조돼 높은 약가를 받을 수 있어 굳이 제약사가 리캡 용기를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재사용이 뻔히 보이는 리캡 용기 출시를 묵인한 식약처의 조치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최근 식약처가 보여준 CMIT/MIT 함유 치약와 리캡 용기에 대한 조치가 상반되기 때문이다.
최근 가습기살균제 성분인 CMIT/MIT 함유 치약이 논란이 되자 식약처는 즉각 회수와 전수조사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CMIT/MIT 함유 역시 허가규정을 위반한 보존제로서 약사법에 저촉된다.
식약처는 의약외품으로 분류된 치약에는 "극미량으로 인체에 무해하지만 위해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해당 치약을 회수 조치한 것과 대조적으로 의약품으로 분류된 점안제에는 허가사항 변경 이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국정감사에서도 식약처의 안일한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국민의당 최도자 의원은 "허가사항 변경에도 불구하고, 식약처가 재사용이 가능한 고용량 점안제를 시판허가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더불어민주당 양승조 의원 역시 "보존제를 함유하지 않은 일회용 점안제는 개봉 후 무균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며 용기나 포장이 그 의약품의 사용 방법을 오인하게 할 염려가 있는 의약품의 제조 등을 금지한 약사법 규정을 들어 식약처의 규제를 요청했다.
"식약처 나서달라" 네 차례 읍소에도 묵묵부답
리캡 용기의 재사용 실태는 어떨까. 양승조 의원이 밝힌 한 조사에 따르면 사용자의 80.9%가 일회용 점안제를 재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자 개별 제약사가 식약처의 대응을 '읍소'하기에 이르렀다.
유니메드제약에 따르면 해당 제약사는 올해 8월부터 9월 말까지 네 차례에 걸쳐 탄원서를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유니메드제약은 1차 민원을 통해 리캡 제품에 대한 제조판매 금지와 올바른 1회용 점안제 사용에 대한 대국민 홍보를 요청했다.
2차에서는 리캡 용기의 약사법 제62조 위반여부에 대한 분명한 유권해석을, 3차에서는 식약처의 의약품 문헌재평가 이후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회신해 줄 것은 '간곡히 요청'했지만 아직 답을 듣지 못했다.
유니메드제약 관계자는 "식약처의 행정지시 및 안전성 서한에도 불구하고 리캡 점안제 재사용 실태가 달라진 게 없어 최근 네 번째 민원을 제기했다"며 "서면으로 회신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지만 아직도 답을 듣지 못해 답답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식약처는 2015년 안전성 서한 배포 이후 이렇다 할 조치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으며 향후 계획도 '내부 논의 중'이라는 말로 일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메디칼타임즈와의 취재에서 "국정감사에서도 리캡이 지적됐다"며 "식약처 내부 논의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점안제 재사용 논란, 해법은?
유니메드제약은 1회용 점안제의 올바른 사용방법 정착을 위해 고용량 제품 가격의 1/3 수준으로 점안제 가격인하를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히려 딜레마에 빠졌다.
리캡 제품이 계속 판매되면서 국민 안전을 위한 저용량, 재사용 불가 용기라는 법규대로 점안제를 생산한 제품이 시장에서 외면받는 역설적인 상황에 빠진 것.
해법은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는 "고용량 리캡 제품의 판매량이 전년도에 비해 올해도 증가했다"며 "저용량 리캡 제품의 판매량에 변화가 없었다는 점은 곧 소비자의 인식이 리캡은 재활용해도 된다는 쪽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비자들이 허가사항대로 점안제를 1회만 사용하고 버렸다면 처방량이 2배 이상 증가해야 하지만 그 증가폭은 그에 훨씬 못미친다"며 "식약처가 나서서 1회용에 적절한 용량으로 양을 줄이고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1회용 점안제는 무조건 많이 담을수록 약값이 높아지는 약가 제도에 적용을 받는다. 굳이 제약사가 고용량 리캡 용기를 거부할 필요가 없는 근본적인 이유다.
1회용 점안제의 용량도 1회용에 맞도록 줄여야 한다. 모든 의약품의 용법, 용량은 전 임상, 임상 2상을 토대로 정해진다. 투여량이 1~2 방울로 정해진 점안제라면 1~2 방울만 점안하도록 용량를 규제해야 한다.
현재 국내서 1회용 점안제로 출시된 제품의 규격은 0.3ml~0.8ml다. 한 방울의 점안제 크기는 0.04ml로 대략 8~20방울의 양이 1회용으로 판매되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관행처럼 굳어진 1회용 점안제 재사용 인식을 바꾸려면 식약처가 나서서 리캡 점안제 회수에 나서야 한다"며 "점안제의 올바른 사용법을 동영상이나 온라인 매체로 홍보해 주는 것도 방법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