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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이 두렵다" 의료사고 위험에 내몰린 교수들

발행날짜: 2016-11-28 05:00:59

전공의특별법 시행 한달 전…당직의사 인건비 정부 지원 요구 잇따라

|초점| 전공의특별법 시행 한달 전…의료사고 사각지대 놓인 교수들

전공의법 시행으로 근무시간이 주80시간으로 제한하면서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펠로우, 주니어 교수들이 채우고 있다. 환자안전을 위해 전공의 수련환경을 개선했지만 이번에는 교수가 의료사고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메디칼타임즈>는 법 시행에 앞서 환자안전을 위협하는 의료현장을 긴급 진단해봤다. <편집자주>


# A대학병원 A교수(45·내과 부교수)는 2주에 한번씩 당직을 선다. 온콜(on-call, 자택에서 대기하며 응급시 전화로 콜을 받는 것)이 아니다. 병동 내 대기하면서 수시로 환자상태를 살피는, 말 그대로 당직이다. 전공의 특별법 시행에 앞서 전공의 근무시간을 주80시간으로 크게 단축하면서 나타난 변화다.

# B대학병원 B교수(44·흉부외과)는 주 2회 당직이다. 전공의특별법에 주80시간에 맞춰 전공의에게 주 2회(주중 1일, 주말 1일)로 당직을 제한하면서 나머지 당직은 교수 전체에게 할당됐다. 주니어 교수는 주 2회, 시니어 교수들은 격주로 1번씩 당직이다. 새벽부터 시작한 응급수술이 아침이 돼서야 끝나도 오전 8시부터 외래에 들어가야한다.

# C대학병원 C교수(43·외과) 또한 주 2회 당직을 선다. 아직은 젊다고 하지만 40대. 밤을 꼬박 새고 응급수술, 병동 환자 케어를 한 다음날은 다리가 휘청거린다. 하지만 오전 외래, 오후 수술 일정에 차질이 생겨선 안된다는 일념으로 무거운 몸을 이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스스로 의문이다.

전공의특별법 시행 한달을 앞두고 각 수련병원에선 펠로우는 물론 교수들까지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교수들 사이에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러다가 전공의 보다 내가 먼저 의료사고 낼 판' 이라는 하소연이 쏟아지고 있다. 전공의 근무환경을 개선한 데 따른 풍선효과인 셈이다.

지난 2000년도 초반부터 최근까지 빅4병원 병상 수 현황만 보더라도 이는 예고된 일이었다.

지난 2001년도만 해도 서울대병원 1546병상, 세브란스병원 1533병상, 삼성서울병원 1250병상, 서울아산병원 2140병상이었던 것이 2013년도 서울대병원 1747병상, 신촌세브란스병원 2089병상, 삼성서울병원 1966병상, 서울아산병원 2680병상으로 크게 늘었다.

이처럼 대학병원이 수년간 몸집 부풀리기를 거듭하면서 병상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반면 전공의, 펠로우, 교수 등 의사 수는 제한적이다보니 의사 한명당 커버해야 하는 환자 수가 증가한 것은 당연한 일.

이 과정에서 각 대학병원은 의사인력을 늘리기 보다는 전공의에게 전적으로 의존했고, 극한의 상황에 몰린 전공의들이 환자안전을 위협하기에 이르자 전공의 주80시간 이상 근무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전공의법(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자 각 대학병원들은 펠로우, 주니어 교수에게 병동 당직에 대한 책임을 주며 고통분담을 함께 하길 요구했고 이번에는 교수들이 꾸역꾸역 버티며 환자진료를 이어가는 상황에 몰렸다.

병원의 시스템은 물론 인프라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채 전공의 근무환경만 개선한 결과다.

그나마 전공의 및 펠로우가 많고 입원전담전문의 즉, 호스피탈리스트 채용이 수월한 빅5병원은 나은 편. 그외 상당수의 수련병원에선 "환자안전이 더욱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위 사례의 A교수는 "이러다가 환자가 죽으면 누가 책임을 져야하느냐. 이 상황은 말이 안된다"라면서 "1년 유예한 전공의 주 80시간 조항을 실제 적용하는 내년말에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각 수련병원은 전공의 주80시간을 지키지 않는 데 따른 불이익 때문에 펠로우는 물론 교수들에게 업무 부담을 높여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병원이 특히 지방의 수련병원에선 내년까지도 호스피탈리스트 채용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더욱 답답하다"고 하소연 했다.

B교수는 "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 외과계 교수들은 이미 업무과다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환자 수는 줄지 않았고 해야할 일은 그대로다. 결국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한다는 얘기인데 고스란히 펠로우, 교수들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추후 호스피탈리스트가 채용된다고 해도 과연 외과계 병동까지 커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면서 "외과계 교수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수들 사이에선 정부가 당직의사 인건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저수가 체계에서 각 병원이 추가적인 인건비를 부담해 의사를 채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 정부가 당직 의사 인건비를 주고 추가적인 의사 인력을 채용하도록 하는게 대안이라는 얘기다.

지방의 대학병원 한 내과 교수는 "대학병원은 저수가에 선택진료비 폐지 등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으면서 추가적인 인건비 지불 능력이 없다고 봐야한다"면서 "정부는 법 시행만 밀어부칠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제도 안착이 가능하도록 방안을 모색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주니어 스텝들의 격무는 전공의들도 공감하는 분위기.

지방의 D대학병원 전공의 대표는 "젊은 교수들은 외래 및 수술도 많고 전공의와 협진도 함께 해준다. 그들이 힘들어 하는 것은 우리도 안다. '다들 힘들다' '조금 더 참아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김현지 평가수련이사(서울대병원)는 "전공의법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의료인법으로 확장해 의사도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대상이 돼야하다"고 주장했다.

환자안전을 위해 전공의특별법이 제정됐듯이 주니어 스텝 등 전체 의사가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하려면 전체 의사로 확대 적용해야한다는 얘기다.

그는 "지금은 전공의 근무환경을 보호하지만 의료인법이 되면 의사 전체의 근무환경을 보호하는 법이 될 것"이라면서 "환자의 안전을 위해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