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상급종합병원 지정 '중증도 평가 기준'의 부작용
#1 인공관절 치환술 후 감염으로 수차례 수술을 받은 환자. 거듭된 치료 실패로 보행이 불가능한 상태로 장기입원 후 치료가 시급하지만 병실 부족으로 돌려 보냄.
#2 손가락 절단으로 긴급히 수지접합술을 요하는 환자. 골육종 등 암환자 수술을 이유로 다른 병원으로 정원 조치함.
이는 최근 상급종합병원에서 경영상의 이유로 정형외과 병동 축소 등 중증도 유지에 안간힘을 쓰면서 종종 발생하는 일들이다.
27일 병원계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퇴출 1호로 '정형외과'가 떠올랐다. 2017년 전공의 모집에서 여전히 높은 경쟁률을 보인 정형외과가 어쩌다 이런 취급을 받게 됐을까.
첫번째 원인은 상급종합병원 지정에 중증도 평가에 정형외과 진료의 상당수가 제외돼 있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정형외과 수술 수가가 원가 대비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정형외과는 수술장비가 크고 비용도 비싸다. 게다가 장비가 크고 무거워서 수술시 의료인력도 많이 투입해야한다. 한 마디로 수술 원가가 높다. 하지만 수가는 쥐꼬리. 수십년째 동결 수준.
게다가 인공관절술, 수술접합술 등 대학병원에서 실시하는 정형외과 수술의 상당부분을 전문병원에서도 받을 수 있다보니 중증에서 제외된다.
즉, 수술을 하면 할수록 병원의 중증도가 낮아져 상급종합병원 퇴출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이쯤되니 서울권 K대학병원은 중증도를 높이고자 정형외과 병동에 베드를 대폭 줄였고, S학병원도 거듭 병동 축소를 검토 중이다. 이외의 상급종합병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상급종합병원이 감기환자 등 경증질환자 보는데 매진해선 안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중증도 평가 기준이 의료현장에선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고 있는 셈이다.
S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병원 경영진이 정형외과는 수술을 하면 할수록 적자라며 거듭 압박해 심적 부담이 크다"면서 "나 스스로 환자를 치료하는데 위축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정형외과 전문의 출신인 모 대학병원 기조실장은 "나 또한 정형외과 전문의지만 기조실장이 되서 지표를 뽑아놓고 보니 중증도 손해를 감수하면서 저수가인 정형외과 병동을 유지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뭔가 잘못 됐다고 생각하지만 정형외과가 퇴출 대상 1호가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 있다"면서 뼈아픈 자기 고백을 털어놨다.
그는 "앞서 정형외과학회 차원에서 수술에 대한 수가를 인상했더라면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텐데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위의 사례처럼 환자는 물론 이를 지켜봐야하는 의료진에게도 악몽같은 일이지만 중증도 평가를 기반으로 한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이 바뀌기 전에는 개선의 여지가 없는 실정이다.
정형외과학회 백구현 이사장(서울대병원)은 "정형외과 60여년의 역사 속 세계에서도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한국의 상급종합병원 정형외과 의사로 평가하면 수술을 하면 할수록 병원 경영난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됐다"고 씁쓸함을 전했다.
예상치 못한 복병에 복지부 측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복지부 관계자는 "중증도 평가 기준이 특정과의 존폐를 위협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의 역할에는 전공의 수련도 있는데 일부 과가 위축되면 안된다는 의료계의 주장에 공감하다"면서도 "당장 개선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질병분류체계를 크게 변화시켜야 하는 부분이어서 학계의 주장을 모두 수용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일부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선 별도 공고를 통해 추가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오는 2018년 적용하는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에는 반영하긴 어렵지만 2020년부터는 새로운 패러다임 도입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질병분류체계부터 의료전달체계를 아우르는 복잡한 기준으로 이를 개선하려면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에서 재논의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