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상 의사는 모든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헌데 굳이 명찰에 전문과목까지 써서 의사 목에 채울 필요가 있는가."
보건의료인 전원에게 명찰 패용을 의무화하는 의료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 시행이 다가오면서 일선 개원의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불필요한 행정 절차인데다 오해만 불러올 수 있는데도 무조건 법안을 강행하고 있다는 것.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안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이다.
대한개원의협의회 노만희 회장은 "노만희 정신과 의원에 예약을 하고 노만희 정신과 의원 간판을 보고 병원에서 들어와서 내 사진과 이름이 적힌 의사면허증이 있는 대기실에서 대기한다"며 "이후 나와 마주하는 순간 의학박사 노만희가 적힌 명패를 보게 되는데 환자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겠나"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도대체 이런 불필요한 행정 업무를 늘리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다"며 "의사들을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 난듯 하다"고 강조했다.
대다수 개원의들도 이와 뜻을 같이 하고 있다. 개원의들 대부분이 1인 원장 체제인데 굳이 목에 명찰을 채워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A내과의원 원장은 "모든 것을 다 떠나서 무슨 강아지 인식표를 목에 채우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며 "90%가 자기 이름을 걸고 개원하는 의사들에게 도대체 명찰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전문과목을 명시해야 하는 조항이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B의원 원장은 "굳이 명찰을 채워야 한다면 '의사'라는 타이틀만 있으면 될 일이지 전문과목까지 새겨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의사면허를 가진 이는 모든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는 의료법과도 배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가령 아무리 비만 치료를 잘 하는 원장이라고 해도 명찰에 '산부인과 전문의'가 적혀 있으면 환자 입장에서는 혼란이 들지 않겠느냐"며 "전문의 타이틀이 오히려 혼란과 오해만 불러오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각 전문과목별로 명찰 패용 의무화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전문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과목들은 명찰 패용 의무화를 반기고 있지만 대다수 과목들은 반대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는 것.
대한성형외과의사회 관계자는 "실제로 불법 대리 성형은 물론, 비 전문가의 수술로 인한 폐해가 점점 더 늘고 있다"며 "그러한 면에서 전문과목을 새긴 명찰의 필요성은 부인할 수 없는 필수 사항"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이러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진료과목별로 의견이 갈리는데다 명찰 패용을 거부할 명분이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고민이 많다.
의협 관계자는 "가장 큰 고민이 진료과별로 의견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라며 "누구 손도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 아니냐"고 털어놨다.
아울러 그는 "또한 명찰을 거부할 수 있는 뚜렷한 명분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다만 감염 관리 등에는 분명 문제가 있을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부분을 감안해 줄 것과 전문과목의 경우 선택에 따라 명시할 수 있도록 일정 부분 완화해 줄 것을 요구한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