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으면 전공의들이 도맡다 시피 했던 입원병동 당직을 이제는 교수들이 선다. 이른바 교수와 전임의가 1박2일 근무를 서고, 전공의는 칼퇴근하는 문화. 지난해 12월 23일, 전공의특별법 시행으로 빚어진 새로운 병원풍경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교수들의 심정은 어떨까.
메디칼타임즈는 최근 A 대학병원 내과 1년차인 김철수(가명) 전공의와 하루 일상을 함께한 뒤 이어 같은 날 병동당직 근무를 서는 김행복(가명) 내과 교수와 밤을 지새웠다.
공식적인 병동당직 근무시간은 저녁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로, 12시간 근무를 선다.
이미 병동당직 근무를 서기 전 하루 종일 오전 외래에 소화기내과 세부전문의로 내시경 시술을 했던 상황. 1박 2일 동안 잠 한 숨 못자고 꼬박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처지다.
"처음 병동당직을 서게 된 계기는 내과 전공의 정원을 채우기 위해서였죠. 지난 몇 년 동안 미달이 돼 전공의특별법 기준에 맞게 전공의 처우를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내과 전공의를 뽑았죠. 그래서 작년부터 병동당직을 서게 됐는데 50 가까운 나이인지라 쉽지 않네요."
A 대학병원의 내과는 전공의특별법이 시행하기 이전부터 법 시행을 염두에 두고, 이전부터 전공의특별법 시행 시스템에 맞춰 의국을 운영한 결과 정원을 모두 채우게 됐다.
병원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난 후인 저녁 8시. 본격적은 병동당직 근무시간이다.
"저녁 10시 이전까지는 그래도 병동당직 간호사들의 콜이 많지는 않아요. 그래도 10시 이전까지는 각 과 전공의와 환자 주치의들이 콜을 받아 직접 처방을 내리니까요."
실제로 저녁 10시부터 병동당직 간호사들로부터 주기적으로 전화와 문자로 콜이 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전문적인 처방을 요하는 것이 아닌 일반적인 소화제나 진통제, 수면제 처방이 대부분이다.
"병동당직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수면을 취하기 어려운 환자들의 소화제나 진통제, 수면제를 처방을 위한 간호사들의 콜이 대부분이에요. 큰 어려움이 없는 처방들이지만 간혹 CPR(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 환자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긴장을 늦을 수가 없어요. 지난 번 병동당직에서도 CPR을 한 환자가 있었기도 했고요."
교수연구실에서 간호사들로부터 콜을 받아 처방을 내린 김 교수는 11시 당직근무 병동과 가까운 내과 의국으로 향한다. 긴박한 상황이 발생할 것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중환자실 당직 근무 전공의를 제외한 모든 내과 전공의들이 퇴근한 후라 내과 의국은 텅텅 비었다.
졸지에 내과 의국을 내과 지도교수가 쓰게 된 셈이다.
"내과 의국에서 TV를 보면서 간호사 콜을 대기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당직서면서 의학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를 보고 있는데 그나마 의국에서 TV를 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데에 만족해요."
"내과 교수는 그나마 낫다…외과 교수는 살인근무"
김 교수는 병동당직 근무를 서면서 기자에게 내과 교수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말한다.
전공의가 말 그대로 '씨가 마른' 외과 계열은 전공의가 맡아서 할 당직까지 터 맡아 교수들이 살인적인 당직일정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수술을 하는 것 자체가 기적적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와 함께 병동당직 근무 조인 A 대학병원 외과 박근철(가명) 교수는 일주일에 3일을 당직을 선다고 한다. A 대학병원의 경우 몇 년째 외과 전공의를 뽑지 못하고 있어 전공의가 근무 설 응급실까지 외과 교수가 담당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새벽에 만난 외과 박 교수는 응급실에 외과와 병동당직까지 총 일주일에 3번을 서게 되면서 병원에 살다시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외과나 비뇨기과 같이 전공의를 뽑지 못한 전공과목들은 일주일에 총 3번을 당직을 서고 있어요. 전공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그래도 5년 안에 전공의가 한명이라도 들어올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당직을 섭니다."
박 교수의 말을 들은 내과 김 교수는 전공의협의회 등에서 반대 주장을 하고 있는 PA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거들었다.
"솔직히 외과의 경우 저희처럼 지방 대학병원은 PA가 없으면 운영 자체를 하지 못해요. 서울의 대형병원은 전공의를 뽑으니까 그나마 운영이 가능한 것인데, 전공의협의회 등에서 PA 반대 입장을 내는 것을 보면서 솔직히 여기 와서 일 한번 해보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교수 연구실에서 쪽잠 자는 신세
새벽 4시. 당직으로 인해 20시간 가까이 잠을 자지 못한 탓에 김 교수는 다시 자신의 연구실로 향한다.
당직 콜을 대기하면서 쪽잠이라도 자보려고 하는 것이다. 이미 연구실 안에 간이침대와 침구를 마련해 놓았다.
간이침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안에도 병동에서의 간호사들의 콜은 계속된다.
"당직비 12만원 받으면서 요즘말로 정말 이러려고 대학병원 교수가 됐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연구실 안에 간이침대에서 쪽잠 자는 신세잖아요. 나는 남자니까 그나마 낫지만 여자교수들은 전공의 당직실에서 잠을 잤다고 들었는데, 정부 정책 입안자들이 직접 당직을 서도록 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교수는 연구실에서 쪽잠이라도 자야 한다고 다짐한다. 다음 날 당직이 끝난 뒤에도 바로 근무가 잡혀 있기 때문이다.
당장 9시에 급하게 생긴 내시경 시술부터 몸이 피로한 탓에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당직근무가 끝나도 아침 먹고 8시에 다시 컨퍼런스 들어가야 해요. 거기다 내시경 시술이 갑자기 9시에 잡혔는데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시술을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네요. 이 후 하루 종일 회진 돌고 외래를 봐야 하는데 나이 50이 다 된 몸으로는 감당하기 쉽지 않네요."
당직근무가 마무리 된 아침 8시. 김 교수는 아침을 먹으며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한탄했다.
"전공의 처우개선이 필요한 점은 공감한다. 하지만 이렇게 안하면 어쩔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전공의특별법을 통과시킨 정부나 국회 모두가 원망스러워요. 솔직히 이로 인한 피해는 모조리 환자한테 돌아가는데 그걸 모르는 것 같아요. 이렇게 밤새고 교수들이 진료하고 외과는 수술까지 한다고 하는 걸 환자들이 알까요. 알면 병원 못 올거에요."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고양이 세수를 한 뒤 김 교수는 다시 내시경 시술을 위해 처진 어깨로 병원 내시경실을 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