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권역응급센터로 지정된 A대학병원. 기쁨도 잠시 밀려오는 행여환자로 눈코뜰새 없이 바빠졌다. 자칫 업무 과부화로 중증응급 환자를 놓치는 것은 아닌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16일 병원계에 따르면 최근 권역응급센터의 환자 전원 기준이 강화되면서 권역센터로 행여환자 전원이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근 병원에서 권역센터로 환자를 전원한 탓이다.
최근 전주 소아 중증 응급환자의 사망 사건에 대한 후속대책으로 응급환자 전원이 극히 제한된 상황이라 권역응급센터들은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게다가 최근 국회 양승조 의원이 권역응급센터가 중증응급환자를 전원할 수 있는 기준 이외에는 전원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상태.
실제로 법이 통과되면 권역응급센터의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의료진들의 우려다.
A대학병원 관계자는 "권역응급센터 지정으로 병원의 위상이 높아져서 흥분돼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면서 "공식적인 수치상에 잡히지는 않았지만 다른 권역센터도 공감하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일부 제한적으로 전원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정부까지 나서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상황에서 사실상 전원하긴 어렵다고 봐야한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B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의료진은 "지역 특성상 행여환자는 많지 않다. 하지만 권역센터 지정 이후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무명남, 무명여 환자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권역은 지역내 가장 최종 응급의료기관으로 행여환자를 보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신속한 대응력이 떨어져 제 기능을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실, 행여환자에 대한 의료서비스 제공에 대해서는 국내 이외에도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고민거리.
미국은 소위 진료비를 받기 어렵고 건강보험 청구도 어려운 행여환자군을 '덤핑'이라고 칭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바 있다.
일본도 이런 환자군을 '다라이 마와리(たらい まわり)' 즉, 폭탄돌리기의 문제점을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명쾌한 해답을 찾기 어렵다 보니 병원간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전원을 보내는 병원 측에선 "권역응급센터인데 사회적 역할을 해야하는 게 아니냐"라는 것을 전제로 "중증도가 높아 상급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에 따른 전원"이라는 이유를 제시한다.
하지만 환자를 받아야 하는 권역응급센터 측은 "돈도 안되고 영양가도 없으니 보내는 게 무작정 보내는 게 아니냐"라는 의심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모 권역응급센터 의료진은 "응급환자의 치료에 책임을 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마치 '환자 전원=죄악'으로 규정짓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특히 양승조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이 현실화될 경우 지금의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