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연명의료법 시범사업 3주째 의료현장 점검
환자에게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를 찾아주자는 취지에서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이 막상 의료 현장에선 예상대로 먹혀들지 않은 채 부작용 우려를 낳고 있다.
우려했던 연명의료계획서…사실상 방치 상태
14일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전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장)에 따르면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이행 시범사업 참여기관 10곳을 대상으로 현황을 파악한 결과, 7곳 중 실제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사례는 시범사업 실시 이후 최근까지 총 4건에 그치고 있다.
현재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이행 시범사업 기관은 강원대병원,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고려대 구로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영남대의료원, 울산대병원, 제주대병원, 충남대병원 등 10곳.
허 교수는 이중 7곳에 대해 연명의료계획서 추진 현황을 파악했다. 그 결과 서울대병원, 울산대병원, 강원대병원, 충남대병원, 영남대병원은 시범사업이 시작된 이후부터 최근까지 환자에게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받지 못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3명, 서울성모병원 1명이 작성한 것이 전부로 해당 의료진은 이례적인 사례라고 전했다.
서울성모병원 환자의 경우 의사 출신 환자여서 접근이 용이했으며 세브란스병원은 2명의 환자는 먼저 존엄사에 대해 먼저 의사를 내비쳤고 나머지 1명은 자식이 없는 상태로 직접 서명을 받았다.
복지부는 지난 10월 23일부터 내년 1월 15일까지 시범사업을 실시, 내년 2월부터 본 사업에 들어간다고 밝힌 상태.
이 상태가 지속될 경우 내년 2월, 본 사업 시행이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게 의료현장 의료진들의 의견이다.
허대석 교수는 "남은 시범사업 기간동안 법의 모순되는 점을 수정, 보완하지 않으면 법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의료현장이 왜곡될 것"이라면서 "의료진의 방어진료로 결국 그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부분은 환자 보호자와의 면담 단계에서 차단되는 경우가 90%. 의료진이 환자 본인에게 임종을 앞두고 있는 것을 고지하며 연명의료를 지속할 지 여부를 묻고 사인받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기 때문이다.
허 교수는 "서울대병원의 경우 1일 평균 2~3명의 환자가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대상이 되기 때문에 거의 매일 시도하지만 지난 3주간 단 한건도 작성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환자의 가족들은 환자가 충격을 받을 것을 우려해 약 90%가 말도 꺼내지 못하게 막았고, 10%정도 환자에게 말을 꺼냈지만 '귀찮다' '나한테 그런 걸 왜 묻느냐' '가족에게 물어봐라'라는 식의 답변을 받았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연명의료법 무색한 의료현장…여전히 DNR에 의존
매년 약 20만명이 의료기관에서 사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전국 일평균 500명의 환자가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대상이지만 사실상 무의미한 법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앞서 법 시행 이전에 허대석 교수가 자체적으로 서울대병원 말기 환자 114명을 대상으로 '연명의료'에 대한 의향을 물어본 결과 환자에게 말을 꺼내기도 전에 보호자와 논의 단계에서 100명이 반대했다.
이어 남은 14명의 환자에게는 직접 면담을 실시했지만 이중 5명은 대화자체를 꺼렸으며 9명 만이 면담에 성공했다.
다시 말해 전체 114명 중 9명 10%도 채 안되는 소수의 환자와 면담이 가능할 정도로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할 때 환자 본인에게 접근, 동의를 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편법이 등장하고 있다. 환자의 의식이 있을 땐 서류작성을 하지 않다가 사망 하루이틀전 의식이 없을 때 가족들에게 서명을 받는 식이다.
허 교수는 "이는 당초 법 취지와 크게 다른 모습으로 결과적으로 의사 방어진료를 조장한다"면서 "최근 정부가 법 처벌을 1년 유예를 추진한다고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편법 아닌 편법은 기존 DNR 동의서에 의존하는 것이다.
허 교수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실제로 현재 시범사업에 참여한 의료기관 중 일부는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하는데 여전히 DNR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환자에게 직접 받는 게 아니라 환자 보호자로부터 서명을 받아 진행했다.
현재 시범사업에 참여 의료기관 한 의료진은 "자칫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하는 게 아닌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면서 "차라리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라고 전했다.
또 다른 의료진은 "무엇보다 서류로 작성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으며 차라리 가족들이 대신 작성하는 것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본 사업 시행 전에 이에 대한 수정, 보완이 시급하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