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54세 남성 환자가 흉통을 동반한 급성심근경색으로 A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급히 콜을 받고 달려온 김 교수는 환자에게 응급으로 '경피적관상동맥중재술(PCI)'을 시행한 뒤, 가이드라인 내 임상권고를 바탕으로 티카그렐러 90mg 용량을 1년간 투여토록 결정했다.
다행히 환자는 치료기간 출혈이나 허혈성 사건의 재발 등 별탈없이 관리가 이뤄졌다.
그런데, 생각지 않았던 문제가 닥쳤다. 지금껏 잘만 처방해왔던 티카그렐러 90mg의 급여 기간이 끝난데다, 티카그렐러60mg 용량은 작년 8월 유지요법으로 식약처 허가를 받았지만 여전히 비급여로 묶여 있는 상황.
정작 치료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선택할 옵션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김 교수는 고민 끝에, 클로피도그렐 기반 이중항혈소판요법(DAPT)으로 스위칭을 시도했다. 해당 환자가 심근경색과 다혈관질환을 동반한 고위험군이니 만큼, 어찌됐든 이중항혈소판요법을 이어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약물전환 일주일 후 고민은 현실로 되돌아왔다. 돌려보냈던 환자를 응급실에서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시술 부위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심근경색이 재발한 터였다.
김 교수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응급 PCI를 시행하고 티카그렐러90mg 치료를 재개하는 일련의 과정을 되풀이 해야만 했다.
이상은 실제 심근경색 환자를 치료하는 대학병원 의료진의 자문을 통해 재구성한 스토리다. 지금 순간까지도 급성심근경색 환자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고령시대 허혈성 심질환 매년 증가…급성심근경색 "치료 비용 가장 비싸"
급성심근경색을 경험한 환자에서 1년 이후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중항혈소판요법 전략의 필요성이 공론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매년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인한 질병 및 사망부담, 의료비용이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HIRA)이 발표한 허혈성 심장질환과 관련, 2011년부터 2015년까지의 심사결정자료를 살펴보면 2015년 진료인원은 약 86만명, 진료비용은 약 7352억원으로 2011년 이후 연평균 증가율은 매년 3.3%씩 올라갔다.
또 고령사회에서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인한 전체 진료인원 대부분이 50대 이상으로, 그 비중 또한 2011년 87.7%에서 2015년 90.9%로 증가한 것이다.
올해 심평원이 국내 허혈성 심질환 치료의 현주소라 할 수 있는 최신 치료 경향을 분석한 자료에서도, 이러한 사회적 이슈는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정책동향 11권 5호 2017).
허혈성 심질환 가운데 급성심근경색의 치료 비용이 가장 높았으며, 고령화의 영향으로 환자수가 계속해서 늘자 새로운 치료적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이다.
'급성 심근경색증(상병코드 I12)' '속발성 심근경색증(I22)' '급성심근경색증에 의한 특정 현재 합병증(I23)'과 관련해 허혈성 심질환자의 1인당 진료비 및 진료인원의 추이를 보면, 1인당 진료비는 2015년을 제외하고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증가했으며, 진료인원 역시 지속 증가했다.
심평원 빅데이터부 김지우 주임연구원은 "2012년부터 5년간 허혈성 심질환 진료경향을 살펴보면 급성심근경색증 환자의 1인당 진료비가 가장 높았다"며 "빅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허혈성 심질환으로 인한 질병 부담이 매우 큰 질환이며, 동 질환으로 인해 병원을 내원하는 환자수가 점차 증가하는 경향을 확인할수 있다"고 언급했다.
대안 마련에 분주? 신규 치료 옵션 진입, 학계 진료지침 손질 끝
재발이 문제가 되는 급성심근경색 환자수가 매년 늘고 있지만, 대안이 없는 게 아니다.
이들 환자에 표준 치료전략으로 급여를 적용받는 '클로피도그렐+아스피린'의 경우엔, 심근경색 1년 이후 시점에 투약시 명확한 임상 근거가 부족하다는 족쇄를 달고 다녔다. 혈전성 심혈관 사건 감소와 관련한 대규모 임상근거가 나와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위기가 바꼈다. P2Y12 억제제 계열 항혈소판제제인 티카그렐러60mg이 1년 후 유지요법으로서 대규모 사용 근거를 내놓으면서부터, 학계 치료 패러다임의 전환까지 논의되는 모양새다.
2만1000여 명 규모의 티카그렐러 PEGASUS-TIMI 54 임상 결과는, 발표 이후 학회 가이드라인에 반영되며 '허혈성 심장질환 고위험군인 심근경색 환자에, 12개월 이상의 DAPT를 추천'하는 강력한 근거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바람은 국내 학회를 비롯, 미국 및 유럽지역의 주요 심장학회 가이드라인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올해 업데이트를 마친 유럽심장학회(ESC) 진료지침은, 이들 환자에 티카그렐러의 전반적인 임상혜택을 인정해 '티카그렐러60mg'을 기반으로 한 DAPT 전략을, 클로피도그렐이나 프라수그렐보다 우선 권고했다.
또 최근 성료한 미국심장협회(AHA) 연례학술대회에서는 급성심근경색환자에 1년 이후 이중항혈소판요법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규모 임상이 발표되며 여기에 힘을 실었다.
'COREA-AMI'로 명명된 해당 임상에서, 전체 1만3831명 급성심근경색 환자 중 치료 1년째 증상이 안정된 환자는 1만1507명이었고 이 중 3분의 2 이상이 이중항혈소판요법을 유지한 환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스피린 단독으로 치료한 환자군보다 이중항혈소판요법을 연장해 사용한 치료군에서, 주요심혈관사건(MACE)의 발생이 낮게 나타났다.
고위험군 환자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강했고, 관건이었던 주요 출혈 발생에 있어서도 아스피린 단독군과 이중항혈소판요법을 연장해서 사용한 환자군 사이에 차이는 없었다.
"들어왔는데 쓰지 못한다"…허혈성 심혈관 사건 줄이는 혜택 인정해야
대한심혈관중재학회(KSIC) 제36차 하계대회에서도 올해 심혈관 중재 분야의 최신 이슈들 중 하나로 PEGASUS-TIMI 54 임상근거를 올렸다.
서울아산병원 이철환 교수(심장내과)는 "앞서 대규모 PLATO 임상에선 급성관상동맥증후군(ACS) 환자들을 대상으로 아스피린 병용전략에서 클로피도그렐 대비 티카그렐러90mg을 1년간 사용하는 것에 심혈관 사망, 심근경색, 뇌졸중 등의 허혈성 사건 발생에 혜택이 더 많다는 결론을 검증했다"면서 "1년 이후에 대한 치료전략이 궁금해지기 마련인데, 이에 대한 결과를 PEGASUS 임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2007년 발표된 CHARISMA 임상연구의 사후연구(post hoc) 결과, 심근경색 병력이 있는 환자에서 아스피린 단독요법에 비해 아스피린에 클로피도그렐을 병용하는 이중항혈소판요법 사용시 심혈관 사망, 심근경색, 또는 뇌졸중 등의 심혈관 사건 발생 위험이 유의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도 "그러나 해당 결과가 하위분석 연구의 사후연구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가설에 그치기 때문에 명확한 근거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제한을 뒀다.
불안정성 협심증, ST 분절 비상승 심근경색(NSTEMI), ST 분절 상승 심근경색(STEMI) 등이 포함되는 ACS의 특성상 질환의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항혈소판제에 유효성 차이를 증명하기 위해선 대규모 임상이 아니면 정확한 답을 알 수 없다는 평가였다.
때문에 작년 8월, PEGASUS-TIMI 54 연구를 근거로 티카그렐러60mg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라벨 추가 적응증을 획득했다. 심근경색 병력(최소 1년 이상 이전에 발생)이 있는 환자에서 티카그렐러60mg 제형을 아스피린과 병용해서 사용할 경우, 혈전성 심혈관 사건 위험 감소에 대한 효과를 인정받은 셈이다.
연세의대 장양수 교수(심혈관센터장)는 "기존에 급성심근경색 1년 후 환자에는 아스피린과 클로피도그렐을 병용하는 전략을 추천했지만, PEGASUS 연구가 나오면서 전 세계적으로 상황이 많이 바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상 급성심근경색증을 경험한 환자들에서 발병 후 1년이 지나더라도 심혈관사망, 뇌졸중, 심근경색의 재발률은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이들에 관리전략으로 고용량 스타틴을 사용하는 것과 항혈소판제를 유지하는 방법이 제시되는데, 혈전성 심혈관 사건 감소에 대한 근거와 관련 '당뇨병, 만성신장질환, 다혈관질환, 2번 이상의 MI 병력' 등 심근경색 환자 고위험군에서는 새로운 치료옵션이 필요하다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특히 허혈성 사건 발생 위험이 높은 당뇨, STEMI, 콩팥기능 저하, 말초혈관폐쇄질환 등이 동반된 고위험군에서는 출혈 위험을 감안하고 허혈성 사건의 예방을 위해 티카그렐러60mg 제형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었다.
장 교수는 "국내에서는 아직 티카그렐러60mg 용량을 급여 사용할 수 없다는데, 학회 입장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면서 "논문 해석과 관련 두 가지 약물을 병용하는데 따른 출혈 위험은 당연히 한 개 약물 쓰는 것보다 높을 수 있다. 전반적인 허혈성 심혈관 사건을 분명하게 줄였다는 점을 종합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밝혔다.
|편집자주|'급․기․야'는 '급여기준 이젠 이야기 할 때'의 줄임말로, 건강보험 재정절감 때문에 제한적인 의약품 및 치료행위 등의 급여기준을 개선해, 환자의 의료서비스 혜택 확대를 추구하는 메디칼타임즈의 연재 컨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