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무진 회장에 대한 3번째 불신임안이 발의되며 초미의 관심을 모았던 대한의사협회 임시 대의원총회가 결국 극단적 분열만 확인한 채 파행으로 끝을 맺었다.
의협 회장 선거를 앞두고 있어 정치색을 떨칠 수 없었던데다 찬성과 반대 세력으로 갈라져 논쟁조차 이뤄지지 않으면서 대의 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까지 제기됐다.
파행으로 이어진 임시총회…논의조차 못한 채 안건 폐기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는 더케이호텔에서 추무진 회장에 대한 불신임안과 의료전달체계 개편 논의안 등 두가지 안건에 대한 임시 대의원총회를 개최했다.
임기를 두달여 밖에 남기지 않은 추 회장에 대한 불신임안인데다 벌써 3번째 불신임 시도라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이 모아진 것이 사실.
하지만 재적 대의원 232명 중 정족수 확인시까지 자리를 지킨 대의원이 125명에 불과해 논의조차 해보지 못한 채 정족수 미달로 불신임안은 자동 폐기됐다.
의협 정관 20조 2항에 따르면 임원에 대한 불신임은 재적 대의원 3분의 1 이상의 동의로 추진되지만 안건 의결은 3분의 2 이상의 참석과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같은 결과는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미 대의원총회가 개시되는 순간부터 정족수는 턱없이 부족했고 이를 의식한 듯 안건 논의는 계속해서 시간을 끌며 미뤄졌다.
결국 1시간여가 지난 후에 본격적인 안건 논의에 들어가기 위한 정족수를 확인했지만 참석 대의원은 136명에 불과했고 의장단은 1번 안건인 불신임안과 2번 안건인 전달체계 논의의 순서를 바꾸는 방식으로 시간을 확보했다.
하지만 임총의 목적이 추 회장에 대한 불신임안이었다는 점에서 그 외 논의는 사실상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불신임의 주요 이유가 의료전달체계 개편 권고안을 강행한 것에 대한 책임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1번 안건과 2번 안건에 대한 찬반을 동일시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로 인해 의료전달체계 개편 논의에 대한 입장은 별다른 논쟁조차 진행되지 않은 채 표결에 붙여졌다. 찬성 의견에 대한 발언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어진 표결에서 개편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는 의견은 6명에 불과했고 반대 120명, 기권 4명으로 개편 논의를 중단하는 것으로 의결하며 2번 안건에 대한 논의는 마무리됐다.
문제는 이러한 안건이 통과될때까지도 정족수가 채워지지 못한데 있었다. 이로 인해 대의원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정족수 확보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쏟아졌다.
A대의원은 "의회에서도 필리버스터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지 않느냐"며 "우리도 계속해서 논의를 진행하며 대의원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 보자"고 제안했다.
B대의원은 "임수흠 의장의 명의로 전 대의원에게 참석 독려 문자를 보내고 의장 직권으로 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며 "다들 힘들게 모였는데 결정을 보고 가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C대의원은 "불신임안이 3분의 2이상의 참석이 필요하다면 사퇴 권고안으로 수정 발의해서 사퇴를 권고하자"며 "정족수 미달로 돌아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에도 불구하고 대의원들은 오히려 더 이탈하기 시작했고 결국 최종적으로 정족수를 확인했을 때는 개의 시간에 확인한 136명보다 11명이 빠진 125명으로 확인되면서 결국 불신임안은 성원 미달로 자동 폐기됐다.
절반으로 찢어진 대의원…극단적 분열만 확인
그렇다면 왜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불신임에 대해 대의원들의 의견이 극단적으로 갈린데다 이에 대한 표출 방식도 달랐기 때문이다.
불신임에 찬성하는 대의원들만이 총회장을 채우고 반대 혹은 관심이 없는 대의원들은 아예 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의료전달체계도 마찬가지. 이에 찬성하는 일부 대의원들은 아예 총회에 나오지 않았다.
실제로 이날 총회에 의학회 대의원들의 자리는 대부분이 비워져 있었다. 일부 직역 의사회 자리도 마찬가지다.
의학회 대의원 45명 중 끝까지 자리를 지킨 대의원은 5명에 불과했다. 재적 대의원 중 40명의 자리가 이미 비워져 있었다는 의미. 아무리 총회를 연장한다 해도 정족수를 채우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는 의미가 된다.
결국 재적 대의원 232명 중 불신임에 찬성하고 의료전달체계를 반대하는 125명만이 총회장을 채우고 나머지 절반에 가까운 107명은 아예 총회장에 나오지 않은 셈이다.
이로 인해 이날 총회에서는 이러한 결과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대의원들이 아예 총회장에 나오지 않은 것은 책임을 물어야 하는 행위라는 주장이다.
전공의 D대의원은 "대의원들의 직능과 직역, 지역이 다르다는 것은 각자 자신들의 의견을 공정하게 내자는 의미 아니냐"며 "의학회 대의원들이 거의 오지 않았는데 어느 단체나 어느 직역이 이렇게 사유없이 불참했을 경우 대의원회에서 제재를 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불신암을 발의한 최상림 대의원은 "임총이 있기 얼마전부터 특정 직역이 불참해 추무진 회장을 구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 소문이 사실로 드러났다"며 "이러한 문제에 대한 후폭풍은 집행부가 온전히 져야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로 인해 임수흠 의장 등 위원장단들도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임수흠 의장은 "이날 총회를 파행으로 이끈 의학회의 행태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며 "대의원회를 무시한 처사"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 또한 의견을 표출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의견도 있다. 불참 또한 대의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의결권의 하나라는 것이다.
총회에 불참한 의학회 E대의원은 "의학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불참했다는 얘기가 있지만 이는 절대 사실이 아니다"며 "나도 그렇고 의학회 소속 대의원들의 자율적 판단이며 이 또한 대의원으로서 가지는 의결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의협 회장 선거를 앞두고 의료계의 주요 안건들이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흐르고 있는 상황도 일부에서 거부감을 가지는 이유가 된다는 의견도 있다.
의학회 F대의원은 "의협 회장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고 지금 이 시점에 이러한 대의원총회가 소집된 것도 그와 관련된 많은 후보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생각"이라며 "굳이 이러한 정치색을 띈 총회에 나가야 하는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추 회장의 불신임과 의료전달체계 개편안에 대한 내부 분열이 절반의 참석, 절반의 불참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로 나타났다는 의미.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의협 대의원회가 사실상 대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대의원회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
의학회 E대의원은 "굳이 만약 예를 들어 내가 만약 총회에 나가 추 회장에 대한 불신임안이 타당하지 않다는 발언을 했다면 온갖 비난과 야유가 쏟아졌을 것"이라며 "의료전달체계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신동천 의대교수협의회장이 의료전달체계 개편 토론회에 갔다가 일대 다수로 입에 담지 못할 봉변을 당하고 왔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며 "반대하는 자들의 목소리만 가득 차있고 심지어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고성과 원색적 비난이 난무하는 상황에 무슨 대의 기능을 논하고 책임론을 말하나"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