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Times
  • 병·의원
  • 대학병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제일병원 노사 평행선

발행날짜: 2018-06-07 06:00:57

경영악화 대책 놓고 교섭 악화일로…일각선 구조 문제 지적

국내 최대 여성전문병원인 제일병원 노사가 경영악화에 따른 대책을 놓고 끝없는 평행선을 그리며 악화일로를 걷는 모습이다.

경영 정상화 후 보상을 주장하는 사측과 체불임금에 대한 즉시 지급을 요구하는 노조가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것. 일각에서는 산부인과 자체의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제일병원지부는 6월부터 시작한 부분파업을 확대해 3일째 200여명의 조합원들이 1층 외래센터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크게 두가지다. 경영악화를 부추긴 이재곤 이사장 일가의 퇴진과 체불된 임금에 대한 전액 보상.

이미 지난해부터 시작된 경영악화로 임금 체불 등을 감수하고 있었지만 지난달부터 임금 15~50%를 일방적으로 삭감해 사실상 생활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이 노조측의 주장이다.

실제로 제일병원은 지난해부터 지속되는 경영악화로 인해 노사 간 갈등을 빚어왔다. 이로 인해 계속되는 협의를 통해 임직원들이 자체적으로 성과급 등을 반납하며 고통을 분담해 왔던 상황.

또한 의료진들도 연장진료 등 진료개편에 동참하며 경영 정상화를 위해 힘을 모으며 분투해왔다.

하지만 저출산이 심화되면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현금 흐름이 극도로 나빠진 병원이 임금 체불을 시작하며 노사 갈등에 불이 붙었다.

이로 인해 노조는 6월부터 부분파업에 들어가며 체불임금에 대한 지급을 촉구했지만 협의에 이르지 못했고, 결국 조합원 500여명 중 필수 근무 인력을 제외한 200여명이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원들은 당장 체불임금을 정리하고 현 상황을 만든 이사장 일가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지만 병원측은 파업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며 난감해 하는 모습이다.

경영 정상화가 이뤄져야 보상이 가능한 상황에서 파업 등으로 더욱 상황이 악화되면 악순환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

이사회 등은 이재곤 이사장 등 일가의 퇴진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합의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도 체불 임금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당장 끌어올 현금이 없다는 것이다.

제일병원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는 임금을 조정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병원을 운영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이사회 구조 개편 등에서는 협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임금은 경영 정상화 전까지 고통 분담이 불가피하다"고 털어놨다.

체불 임금과 삭감이 해결돼야 경영 정상화를 위해 힘을 모을 수 있다는 의견과 우선 고통 분담 후 경영 정상화를 이뤄 임금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는 것.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다툼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산모들의 불편이 커져가며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파업 사태로 인해 제일병원은 분만을 비롯한 대부분의 진료 업무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응급 분만 등을 제외하고는 산모들을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키면서 불만도 커져가고 있는 상황. 국내 최대 여성전문병원이라는 점에서 고위험 산모들이 많아 일부 대학병원을 제외하고는 전원조차 쉽지 않은 이유다.

결국 수익악화로 인해 경영 압박이 발생함으로써 파업이 시작됐으며 이로 인해 환자가 유출되면서 더욱 수익성과 이미지가 악화되는 끝없는 악순환으로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노사는 4일부터 계속해서 교섭장을 열고 타결을 위해 힘을 쓰고 있지만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산부인과병원으로의 구조적 문제가 최대 병원에서 터져나온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하고 있다.

불합리한 수가구조 속에서 저출산이 더해지면서 산부인과병원으로서는 버티기 힘든 한계 상황이 나타난 것이라는 분석이다.

제일병원은 과거부터 국내 최대 규모 분만을 기록해온 여성 특화 전문병원이다. 하지만 저출산 기조가 시작되면서 분만 건수는 2012년 6800여명에서 지난해에는 4200여명으로 40% 가까이 감소했다.

결국 규모와 인력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분만 건수가 40%나 줄어버리면서 수익 구조에 큰 타격이 온 것이다.

여기에 매년 증가하는 인건비와 경쟁 병원들의 시설 투자에 대응하기 위한 리모델링 등 기반 사업이 더해지면서 수년째 적자 경영이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관계자는 "여러가지 상황들을 종합해야겠지만 제일병원 사태는 산부인과의 현 문제점을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저수가에 저출산 기조가 더해지면서 전국 대부분의 산부인과들이 사실상 폐업 위기로 놓이고 있는 것이 분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현 상황은 수년전부터 산부인과들이 지적한 것으로, 분만할 수 있는 곳이 없어진다는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라며 "분만 인프라에 대한 인식 개선과 제도 지원 없이는 붕괴 구조를 막기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