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A종합병원 간호사 K씨는 최근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에게 폭행을 당했다. 수액치료를 거부하는 환자에게 치료의 필요성을 설명하다가 3번에 걸쳐 폭행을 당한 것. K씨는 해당 환자를 고소했다.
이 과정에서 A종합병원은 K씨의 개인 정보라고 할 수 있는 진료기록을 환자 동의 없이 제출할 수 있을까. 정답은 제출할 수 있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병의원에 근무하는 직원이 폭행, 폭언 등의 상황에 연루돼 환자를 고소, 고발 또는 손해배상 청구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환자 동의 없이 진료기록 제출이 가능한지에 대한 민원에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 근거는 산업안전보건법 26조의 2 제2항이다. 일명 감정노동자 보호법이라고 불리는 이 조항에 따르면 사업주는 고객 응대 근로자가 고객의 폭언 등으로 건강장해가 발생했을 때 고소, 고발,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
즉, 병의원을 운영하는 원장은 사업주, 병의원에 근무하는 의료인과 행정 직원 등은 '고객 응대 근로자'이고, 폭행을 행사한 환자의 진료기록은 '필요한 지원'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필요한 지원에는 CCTV 영상 녹화물 등 증거자료 제출, 피해 근로자가 수사기관 등에 출석해 진술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 동료 근로자의 진술 협조 등이 해당된다"며 "가해자 입장인 환자의 진료기록 등의 정보는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요구하면 제출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역시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거나 법률상 근거가 없이 제3자에게 환자의 개인 정보를 제출하면 의료법 19조 위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환자의 진료기록 등을 요구하면 환자 진료기록을 제출 가능하다"고 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지난해 10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장시간 감정노동으로 정신적 스트레스 및 건강장해 등의 피해를 겪는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다.
사업주는 고객의 폭언 등으로 발생하는 직원의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의무적으로 하고, 이 조치를 하지 않으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A종합병원 법무 담당자는 "환자에게 폭행을 당한 의료인이 법적 대응에 나설 때 환자 의무 기록을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의료법만 보면 환자 동의 없이는 진료기록을 제출할 수 없기 때문에 폭행 사건이 생겨도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대한병원준법지원인협회 노상엽 재무이사(부천성모병원)는 "정부 기관의 해석에 따라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진료기록의 제출이 가능하게 됐으니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직원 보호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감정노동자에 대한 불법행위가 생겼을 때 반드시 형사적, 민사적 책임을 진다는 인식이 퍼져야 의료기관 내, 특히 응급실 폭행과 폭언, 업무방해가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