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뒤덮었던 미세먼지가 걷히며 푸른 하늘에서 봄의 얼굴이 그려지던 3월의 어느 날 오후. 강남의 한 볼링장에 중년의 남성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볼링장을 울리는 락 음악과 화려한 조명. 맥주병을 기울이는 20대 남녀들 사이로 수줍게 걸음을 옮기던 그들은 이내 아는 얼굴들을 확인하고 반갑게 손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아우 난 잘 못 들어온 줄 알았어. 내가 이런데를 들어와도 되나 싶었다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들어와도 되는 곳이야 여기?"
다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움츠렀던 것도 잠시. 그들은 볼링장에 걸린 현수막과 배너들을 보며 한 마디씩 던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서초구의사회는 다르다며.
"확실히 서초구의사회는 달라. 다른 구에서 엄청 부러워하더라고. 이번에도 메디칼타임즈와 같이 하나봐. 그래 언론사와 의사들도 좋은 일 해야해. 맨날 욕만 먹지 말고 말야.하하."
그렇게 삼상오오 모이기 시작한지 30여분. 약속했던 4시 정각 드디어 홀몸 어르신 김장돕기를 위해 기획된 제1회 서초구의사회장배 메디칼타임즈 볼링대회의 막이 올랐다.
인사말을 하기 위해 올라선 고도일 서초구의사회장(고도일병원장)은 역시 봉사의 의미와 의사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고 회장은 "서초구의사회는 전국 그 어느 시, 도, 구의사회보다 사회 공헌 활동에 앞장서며 지역 사회와 함께 하는데 앞장서고 있다"며 "이러한 우리의 발자취가 의료계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고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인사말이 끝난 뒤 박수와 함께 시작된 볼링대회는 여느 경기와는 분위기부터가 완전히 달랐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나왔고 볼링공이 구를때 마다 함박웃음도 이어졌다.
"야 이거 30년전에는 내가 볼링장에서 날렸는데 말야. 확실히 늙긴 늙었나봐 힘이 안들어가네 힘이."
대회가 시작된 후 그들의 이야기는 왕년의 볼링 실력으로 이어졌다. 의대 예과 시절 모교 앞에 있었던 볼링장 이야기부터 볼링장에서 연애를 하던 시절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던 동문들은 연신 "맞아. 맞아"를 외치며 과거의 추억을 떠올렸고 일부 원장들은 자신이 살던 동네에는 볼링장이 아예 없었다며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심지어 아예 볼링공을 처음 잡아보는 원장들도 있었다. 그나마 '왕년'에 볼링공을 굴렸던 원장들은 그들에게 레인 뒤에서 특훈을 실시했다.
그렇게 올라간 레인에서 그들의 공은 역시 제대로 구르지 못했다. 연신 거터에 빠져들기 시작했지만 그들에게 스코어는 중요하지 않았다.
볼링대회 중간 고도일 회장이 '자비'라고 강조하며 피자와 치킨을 들고 들어왔고 맥주를 하나씩 손에 든 원장들은 연신 건배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거 술기운에라도 쳐야해. 빨리 원샷하고 다시 굴려보자고. 술 깨기 전에 빨리 빨리 굴려야 한대도."
이렇게 볼링공 구르는 소리와 핀이 넘어가는 소리, 건배 소리가 뒤엉키던 중간 고도일 회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술 취하기 전에 빨리 모금하라는 신호였다.
"자. 여러분 오늘 행사 홀몸 어르신 김장봉사를 위한 것 아시죠? 손에 힘 빠지고 술기운 올라오기 전에 얼른 모금 좀 부탁드립니다. 만원짜리 한장이라도 꼭 힘을 보태주세요."
이러한 고 회장의 말에 원장들은 순식간에 지갑을 열고 모금함에 성금을 채우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부함 앞에 줄까지 선 그들은 행사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아이고 이거 볼링은 내가 제일 못치지만 성금은 내가 제일 많이 내야지. 뭐라도 1등은 해봐야 하지 않겠어? 다들 많이 많이 내라고. 좋은 일 하자고 모였는데 지갑에 돈 남기고 가고 하지 말고 말야."
그렇게 웃고 떠들던 시간이 지나가고 대회의 마지막을 알리는 경기 신호가 울렸다. 마지막 게임 점수를 가지고 우승자를 정하자는 룰은 이미 정해놓은 터였다.
너무 많은 대화를 나눠서일까. 정말 술기운에 의해서였을까. 1라운드에서 고득점을 기록하던 원장들이 점점 점수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승을 차지한 것은 151점을 기록한 김성완 원장(김성완이비인후과의원). 스트라이커상은 3개의 스트라이크를 기록한 이성준 원장 (연세본안과의원)으로 수정 부탁드립니다.
이외에도 공기청정기 등 다양한 상품이 걸려있던 행운상도 연속해서 같은 이름이 나오는 이변 끝에 행사를 준비했던 원장들에게 돌아가며 행사의 막을 내렸다.
하지만 기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 밀려드는 환자들로 미처 볼링대회 시간에 맞추지 못해 대회가 끝난 뒤에야 서둘러 자리를 찾은 원장들은 기부라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며 모금함 앞으로 달려갔다.
"사실 봉사라는 것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누군가를 돕고 싶어 하는 마음. 그 하나면 충분한 거죠. 하지만 워낙 다들 바쁘고 진료실에 갖혀있다보니 미처 주위를 둘러볼 기회를 갖지 못하는거에요. 그래서 의사회가 그 장을 만들기 시작한거죠. 앞으로도 이어질꺼에요. 지금 얼굴들을 보세요. 모두가 행복해 하잖아요. 행복한데 이 일을 그만두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