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일차의료'로 불리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어려움이 심각하다. 이들은 대형병원 쏠림 현상으로 인한 매출 감소에 최저시급의 급격 인상으로 인건비 증가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마흔 두 개의 상급종합병원이 전체 요양기관 비용의 18.1%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3만 개가 넘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진료비 비중은 19.4%에 불과하다. 지난 2001년 의원 진료비 32.8%와 비교해보면 폭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2017년 소위 '문재인케어' 시행 이후 나날이 심해지고 있으며, 일차의료의 붕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이는 재작년 문케어 발표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당시 정부는 무려 30조원에 달하는 재정을 투입해 급진적인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정책을 시작하면서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병행하겠다고 자신했으나 지금껏 바뀐 점은 아무 것도 없다.
문 케어로 인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 대표적인 것들이 상급병실이나 MRI, 초음파 검사 급여화 등인데 자기 부담이 낮아진 환자들이 일거에 대형병원들로 몰리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진료나 검사 예약이 몇 달씩 밀리기 일쑤여서 새벽이나 휴일에 MRI를 촬영하기도 한다. 응급의료센터는 응급과 비응급 환자가 섞여 미어터지고, 날짜를 다투는 암수술까지 대기 시일이 길어지고 있다. 또 일단 입원한 환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퇴원을 거부하거나 늦추고 있어, 입원 대기 적체가 매우 심각하다고 한다.
진료현장의 비명소리가 높아지는데도 정부, 특히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의 태도는 강 건너 불 보듯 느긋하기만 하다. 오래전부터 그리고 최근에도 의료계는 다각도로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일차의료 살리기를 외쳤지만,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등에선 이를 의사들 밥그릇 문제로 곡해하며 니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백안시하는 풍조마저 생겼다. 과연 그럴까.
사회보장기본법은 국민건강보험법의 상위법
사회보장기본법이라는 법이 있다. 1995년에 제정된 법이며 사회보장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규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회보장에 관한 국민의 권리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정하고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복지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다. 여기서 '사회보장'은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삶의 질의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를 뜻하여 사회보장기본법은 '사회복지의 헌법'이라고까지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법에는 사회보장 전달체계에 관한 규정이 있다.
국가적으로 제공하는 사회보장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 그 체계가 필요함은 당연하다. 이는 국민건강보험과 의료서비스에도 적용되며 사회보장기본법에도 규정된 것처럼 쉽고 제때 지역적·기능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또 이런 서비스의 체계는 효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면 우리 건강보험과 의료서비스는 법의 취지에 맞게 전달되고 있는가.
알다시피 우리 의료전달체계는 (원래 있기나 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붕괴된 지 오래다. 한정된 자원을 공평하고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는 사회보험 원칙을 감안하면, 의료서비스도 적절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나누고 전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 의료의 전달체계가 무너지면서 국민이 감당해야 할 피해는 의외로 크다. 급격한 보장성 강화로 문턱이 낮아진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게 되자 정말 급하고 위중한 환자 치료에 지장을 주고 있다.
의료기관 종별, 즉 수직적 전달체계뿐만 아니라 수평적 지역적 전달체계가 무너지면서 의료서비스의 지역적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지방 대학병원들은 충분히 치료 가능한 환자를 수도권에 빼앗기면서 존립 기반이 흔들리고, 젊은 의사들은 수련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다.
결국 무너진 의료전달체계는 의료서비스 이용 행태의 왜곡을 불러와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접근하는데 오히려 지장을 주고 있다. 객쩍은 비유를 하자면 구급차를 가벼운 환자가 앞 다퉈 이용해 생명이 경각에 이른 사람이 제때 이용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국가적 차원의 대응 조직이 필요
따라서 사회보장기본법에 명시된 대로 국가와 지자체 그리고 주무부서인 복지부는 서둘러 지역적·기능적으로 균형 잡힌 의료전달체계 확립에 힘써야 한다. 이는 권고 사항이 아니라 건보법의 상위 개념인 사회보장기본법에서 명령하는 국가의 책임이다. 이를 위해서는 복지부뿐만 아니라 기획재정부나 국토교통부, 지자체 협의도 필요하다.
이에 필자는 복지부만으로는 힘들고 국무총리실 산하에 가칭 '의료전달체계 구축 특별위원회' 등의 조직 신설을 제안한다. 여기서 의료계의 폭넓은 참여를 통해 얼마 전 발표됐던 '건강보험종합계획'을 넘어 빠르고 과단성 있게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진행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이미 사회보장기본법 제29조 2항에도 나와 있는 것이다.
아울러 동법 3항에 의거해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이를 민간의료와 효율적으로 연계되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민간의료를 강제적으로 공공의료에 편입시키려 하지 말고 방역이나 질병 예방, 사회취약계층 의료서비스 등 필요한 보건의료 사업은 공공의료기관을 통해서 국민에게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예컨대, 국립 중증외상센터나 각 시도별 국공립 분만병원 등을 설치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공공과 민간 의료가 상호 보완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