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보건복지부가 부과한 1억원대 과징금 취소 "범법 사실 확실해도 금액 정확하지 않다면 처분 자체 무효"
허위, 부당청구 사실이 명확하다고 해도 이렇게 부당하게 청구한 금액을 정확하게 추계하지 못한다면 처분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와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허위, 부당청구로 1억 617만원의 과징금을 받은 원장이 처분의 부당함을 물어 제기한 항소심에서 처분을 인용한 1심을 뒤짚고 이를 취소하라고 주문했다.
모든 증거가 허위, 부당청구 사실을 가리키고 있지만 처분의 근거가 되는 금액이 정확하지 않다면 이를 근거로 하는 과징금 또한 매길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결론이다.
8일 판결문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지난 2012년 보건복지부가 A의원을 대상으로 현지조사에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당시 복지부는 실제 내원한 사실이 없는 환자를 진료했다며 진찰료와 검사료 2923만원을 허위 청구한 것을 비롯해 검사료 72만원을 부당청구한 사실을 적발하고 1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자 이 의원 원장은 만성질환 환자들이 약품 수량이 많아 내원하지 않은 날에 내원한 것으로 기재하며 처방전을 나눠서 냈다고 주장하며 이를 취소해 달라고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미 원장이 사실확인서를 통해 허위, 부당청구를 인정했고 그가 주장하는 약품 분할 처방도 인정할만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2심 재판부, 즉 고법의 판단은 달랐다. 고법은 이 과징금의 근거가 된 허위, 부당청구의 금액에 주목했다.
복지부가 원장의 의견을 일부 받아들여 허위, 부당청구 건수를 조정했고 이를 기반으로 청구 액수도 조정된 만큼 과징금에 대한 근거가 확실한 것인지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당시 원장이 4차례에 걸쳐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일계표에 기재되지 않은 실제 내원 환자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했고 복지부는 이를 일부 받아들여 341만원여의 허위 청구 금액을 제외했다"며 "이를 볼때 사실확인서 등에 첨부된 허위 청구와 내원일수 명단이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한 진료비 내역에 대한 일계표도 의사가 반드시 작성해야 하는 서류가 아닐 뿐더러 일계표에 기재돼 있지 않은 환자가 실제로 내원한 사실도 일부 인정된다"며 "따라서 복지부가 처분 사유로 내세운 증거로는 원장이 허위 청구한 금액이 정확히 401만원이라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즉 허위, 부당청구 사실을 명확하지만 어디까지가 허위, 부당청구이고 어느 부분이 정당한 청구였는지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이상 과징금 등 처분을 내리는 것은 재량권을 넘어선다는 결론이다.
재판부는 "행정청의 과징금 납부 명령에 대해 법원은 재량권의 일탈 여부만 판단할 수 있을 뿐 어디까지가 재량권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며 "결국 법원이 적정하다고 인정하는 부분에서 넘어선 것만 취소할 수는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한 "결국 원장이 허위 청구한 금액이 401만원이라는 명확한 근거가 없는 한 이 과징금이 적정한지 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수 없다"며 "따라서 이 사건 처분 전부를 취소할 수 밖에 없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