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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왕진 활성화 사업, 아쉽지만 가야할 길

장현재
발행날짜: 2019-11-07 11:20:13

장현재 대한의사협회 KMA Policy 의료및의료정책분과 위원장

왕진 활성화를 위한 '일차의료 왕진수가 시범사업'이 올 연말 첫 발을 내딛는다.

이를 지켜보는 필자의 심경은 꽤나 복잡하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들어내고도 끝내 남는 것은 '진한 아쉬움'과 '책임감', '작은 희망' 정도라 하겠다.

진한 아쉬움

지난해 국회에서 법을 개정할 때부터 정부 내부 논의, 그리고 최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결정까지 그간의 논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은 아쉬움이다.

최근의 환경 변화는 우리 사회로 하여금 왕진의 필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의료서비스를 필요로 하지만 거동이 불편해 직접 의료기관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는 노인, 또 중증 환자에게 왕진은 반드시 필요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이런 배경으로 국회와 정부는 왕진 활성화를 위한 준비작업을 해왔다. 숙제는 크게 두 가지. 왕진 관련 법률 정비가 이뤄져야 했고, 의사가 왕진에 나설 유인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적정수가를 보장하는 일이다.

국회가 먼저 지난해 왕진수가 신설의 근거를 마련하는 법률 개정을 진행했고, 뒤이어 정부가 적정수가와 사업모형 산출을 위한 시범사업을 준비했다.

준비과정은 치열했고, 첫 결과물도 나쁘지 않았다. 비현실적인 왕진수가가 제도 활성화를 가로막는 대표적인 장벽으로 지적됐던 만큼 이를 현실화하는 노력이 있었다.

그렇게 결정된 왕진수가는 11만6200원. 이는 이동시 교통비와 기회비용 등을 감안한 것으로 왕진시 실시한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별도 수가 청구도 가능하게 했다.

이전에는 왕진수가라 할 것도 없이 진료실 내 진료와 동일한 수준의 진찰료, 다시말해 의원급 기준 초진 1만5640원, 재진 1만1210원만 인정돼왔으니 만족할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적잖은 진전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건정심 논의과정을 거치면서 이것이 조정되고 말았다. 포괄수가인 왕진료 A는 11만5000원(별도산정 불가), 비포괄로 의료행위별 별도산정이 가능한 왕진료 B는 8만원 수준으로 내려앉고 만 것.

의료계가 그간 적정 수가가 제도 활성화의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는 점을 수차례 강조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움을 넘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정도의 수가로 누가 진료실을 포기하고 왕진을 가겠는가. 비현실적인 수가가 기존 왕진제도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결정은 두고두고 아킬레스 건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대한의사협회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해야겠다. 왕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작금의 정책적 환경에서 의료계가 논의의 주도권을 가져야 했음에도 의협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책임감과 희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감'과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것은 이것이 환자를 지키는 의료인의 책무로서 반드시 가야할 길이며, 우리는 이제 막 그 길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노인인구의 증가와 이에 따른 노인의료비 부담을 완화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 등 의료 취약계층에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방문진료의 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의사가 해야한다.

왕진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은 환자의 가정과 지역사회 특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지역 일차의료기관이어야 하며, 왕진 의사에게는 사회적 기여도에 맞는 적절한 수가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이번 시범사업 논의과정을 지켜본 의료계는 적잖은 실망감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일부는 왕진제도 신설 자체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그들의 우려를 잘 알고 있고, 함께 염려하는 바다.

다만 이제 막 사업의 첫 발을 내딛은 만큼 조금 더 지켜보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지금은 말 그대로 ‘시범사업’의 단계다. 모든 의사가 왕진에 나서야 하는 것은 아니며, 원하는 의사는 본인의 뜻에 따라 참여하면 된다.

정부에도 당부한다.

거동 불편 환자의 의료접근성 개선, 이들에 대한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왕진을 활성화하고 싶다면 시범사업 과정에서 사업모형과 수가의 적절성을 꼼꼼히 살피고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왕진에 나설 수 있도록 이를 현실화하는 후속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