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약 시장에서 압도적 지배력을 자랑하던 벨빅(로카세린)이 잇따른 암초로 그 위상에 금이 가고 있다. 신약 공세에 이어 발암 가능성이 제기되며 위기론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
하지만 실제 임상에서 비만을 치료하는 의료진들은 FDA의 발표가 추론에 그친 만큼 처방 변경의 여지는 적다며 당분간 벨빅의 위상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현지시각으로 14일 벨빅에 대한 발암 가능성을 경고하고 의료진에게 약물의 혜택과 위험을 동시에 고려하라고 권고했다.
벨빅이 직접적으로 암을 유발한다는 인과관계가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안전성 평가 임상시험에서 암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위험성을 확인한 만큼 이에 대해 고려하라는 내용이다.
이러한 권고는 벨빅의 심혈관 안전성에 대한 추적 관찰 연구에서 불거졌다. 카멜리아(CAMELLIA)라고 명명된 이 대규모 무작위 대조 임상에서 벨빅은 심혈관 안전성을 인정받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3.3년이던 추적 관찰 결과를 5년으로 늘리자 치료군에서 암 유병률이 더 높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FDA가 암 발생 가능성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이렇듯 FDA의 권고가 나오면서 비만약 시장에서 전통 강호로 이름을 날리던 벨빅의 시장 지배력에 대한 위기론이 새어나오고 있다.
지난 2015년 국내 발매 직후부터 블록버스터로 이름을 올리며 시장을 지배했지만 최근 콘트라브(광동제약), 디에타민(대웅제약) 등 경쟁약의 출시와 삭센다(노보노디스크) 등의 신약 돌풍으로 인해 지배력이 낮아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약품 시장조사업체인 UBIST에 따르면 지난 2019년 1분기 비만치료제 시장에서 선두는 19억 6769만원을 판 디에타민이 차지했다.
벨빅의 경우 지난 2018년도 동기 기준 23억 7692만원의 매출을 올렸던데 반해 2019년에는 18억 3522만원으로 20% 이상 매출이 줄어들었다.
지난해 돌풍을 일으킨 삭센다가 시장을 무섭게 장악하며 일정 부분 환자군을 빼앗긴 이유다.
특히 올해 1월에는 가장 강력한 체중 조절 효과로 무장한 큐시미아(알보젠코리아)가 출시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벨빅의 시장 지배력은 더욱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도 새어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서초구 비만클리닉 A의원 원장은 "개인적 의견이지만 솔직히 벨빅은 이미 꼭지점을 찍고 내려오는 추세에 있었다"며 "작년에 삭센다 열풍이 일었듯 효과가 좋은 신약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하향세는 피하기 힘들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벨빅이 부작용 논란이 많기는 했지만 반대 급부로 그만큼 부작용 컨트롤에 대한 부분도 안정화 되어 있는 약물"이라며 "굳이 FDA의 이러한 발표로 시장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임상 현장에서는 이번에 FDA의 권고가 실제 처방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실제 의료진들의 입장에서 처방을 변경할 만한 사유가 될 확률은 적다는 의견이다.
신약 출시로 인해 시장 지배력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이번 FDA의 발표가 추론에 그친 만큼 당장 처방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
대한비만연구의사회 김민정 회장은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비만 전문가라면 누구나 벨빅의 가장 큰 장점으로 안전성을 꼽을 것"이라며 "그만큼 안전성 입증에 힘을 기울여왔고 그 전 연구들로 이를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FDA의 발표 자료를 봤지만 구체적으로 인과관계나 유의성이 나온 것이 아닌 만큼 섣불리 결론을 내기 힘든 상황"이라며 "지금으로서는 좀 더 지켜보며 향후 방향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다른 전문가들도 마찬가지 반응이다. 지금으로서는 가능성에 그친 만큼 굳이 처방을 변경하기 보다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공통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만전문가인 B대학병원 교수는 "FDA의 숏 리포트로 상황이 크게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통계적 유의성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잘 유지되던 처방을 바꿀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과연 FDA가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어떠한 보고서를 낼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자칫 중요한 인과 관계가 밝혀질 경우 약의 퇴출까지도 우려되는 이유다.
이 교수는 "다른 질병도 아니고 암에 대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추가 보고서가 약의 존폐까지도 결정할 것으로 본다"며 "세계적으로 팔리고 있는 약이라는 점에서 학자들간에서도 의견 공유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