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닻을 올린 제2기 보건복지부 산하 수련환경평가위원회(이하 수평위)가 심상치않다.
현재 표면적으로 드러난 갈등은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위원장 선출 과정에서의 불만. 하지만 문제는 진작부터 계속 이어져 온 것으로 곪아 터진 것이라는 게 일선 의료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특히 수평위의 실질적 주체인 복지부가 전문가 의견을 구한다는 명목하에 제역할을 못하는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신임평가위원회와 뭐가 다른가" 지적
수평위가 혹독한 평가를 받는 이유는 그만큼 의료계 특히 전공의들이 여기에 거는 기대가 컸기 때문.
수평위의 짧은 역사를 되짚어보자면, 전공의법 시행 이후 전공의 수련 시스템을 개혁해보자는 취지에서 지난 40여년 이상 유지해온 대한병원협회 병원신임위원회 역사의 마침표를 찍고 탄생한 것이 수평위다.
과거 대학병원 경영진이 주축이 되는 병원신임실행위원회 논의 구조를 뒤집고 객관성과 중립성을 갖춘 13명의 위원(복지부 1명, 의학회 3명, 의협 1명, 병협 3명, 대전협 2명, 전문가 3명)이 결정하는 식으로 전환했다.
그렇다면 전공의 수련에 새 역사를 기대하며 문을 연 수평위는 순항 중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못한 듯 하다. 실제로 수평위는 1기 위원장에 이혜란 당시 한림대의료원장이 자리에 오르면서 병원신임위원회의 축소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는 특히 1기 수평위를 겪으며 한계를 느낀 전공의들은 2기에 접어들면서 변화를 기대했지만, 위원장 선출에서부터 잡음이 새어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모 대학병원 수련담당 교수는 "수평위는 혁신적인 마인드가 필요한 상황인데 기존 병원신임위원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며 "조직 구성 등 여러 측면에서 바뀐 모습을 보여주기 힘든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수평위 역할부터 고민해야한다. 수동적으로 벌어진 사건을 처리하는 조직인지, 수련제도의 혁신을 이끄는 기관인지 모호하다"며 "참여하는 위원들마다 생각이 다르다보니 합의가 어려운 게 아니냐"고 꼬집었다.
수평위에 참석한 바 있는 의료계 한 인사는 "안건 하나하나를 결정하는 것부터가 수평위 위원의 업무인데 이는 수평위 사무국 역할을 위임 중인 병원협회에 맡기는 식도 문제"라며 "엄연한 복지부 소속의 중립적인 위원회인데 과연 그러한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대한내과학회 엄중식 전 수련이사는 "현재 건건이 해결하는 식에서 그쳐서는 수련환경 개혁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수평위 주최로 수련 환경 관련해 거대한 담론의 장을 펼칠 수 있는 포럼 등 거버넌스를 마련하고 로드맵을 도출해야 한다"고 수평위의 혁신을 주문하기도 했다.
교수 중심의 논의 구조 한계?
또한 출범 당시부터 한계점으로 지적받은 의대교수 중심의 위원 구성은 여전히 논란거리. 2019년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도 문제점으로 거론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수평위 한 위원은 "전공의들이 의견을 꺼내놨을 때 교수들은 '너희가 어려서 모른다는 식'의 상하관계 구조가 이어진다"고 섭섭함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전공의에게는 하나하나 중요한 안건으로 보다 심도깊게 논의하고 현실적인 방안을 찾는 노력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반면 교수 출신 위원들은 체감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최근 위원장 선출 과정에서의 잡음도 이 같은 논의구조 때문이라는 게 전공의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의대교수 출신 수평위 위원은 "수평위는 국가적으로 전공의들이 수련을 편하게 받도록 하는 게 아니라 수련을 제대로 받아 우수한 전문의를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라고 본다"며 입장차를 보였다.
그는 "위원 구성 비중을 '교수:전공의' 절반씩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이라며 "다만, 수평위 위원으로 참여하는 교수 한명한명이 전공의 수련에 애착을 갖고 그들의 의견을 수렴하려고 애쓰는 것에는 틀림이 없다"고 말했다.
"의견만 수렴" 복지부 역할 부재 아쉬움
칼자루를 쥔 복지부의 역할부재도 문제점을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서울대병원 100명 이상의 인턴 필수과목 미이수 사태와 관련해서도 수평위를 거쳐 복지부가 처분을 내린 이후 서울대병원이 소명자료를 제출하자 또 다시 수평위로 돌려보냈다.
복지부 측은 "서울대병원 건 이외 세브란스, 삼성서울 등 타 병원 건이 추가됨에 따라 재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의료계 일각에선 "복지부가 왜 칼자루를 안쥐려고 하느냐"며 압박하고 있다.
즉, 복지부는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다는 명목으로 거듭 논의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복지부-수평위를 오가며 논의와 검토를 반복하다 결정이 늦어진다는 지적이다.
처분 당사자인 서울대병원 한 관계자는 "병원 입장에선 하루가 급한 상황인데 복지부가 수평위에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되 결단이 필요할 때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본다"고 답답함을 전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오는 3월을 기점으로 임기가 종료되는 수평위 분과위원회 임원도 새롭게 쇄신해야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복지부는 "검토 중"이라며 모호한 입장이다.
복지부 의료자원과 손호준 과장은 "일각에서 불만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위원마다 입장이 달라 어려움이 있다"며 "맞다 틀리다의 문제라기 보다는 의견을 어떻게 조율해서 가느냐의 문제라고 본다"고 거듭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이에 대해 2기 수평위 수장을 맡은 윤동섭 위원장은 "전공의가 제대로 된 수련환경에서 질 높은 수련을 받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인 만큼 제대로 운영해나가야 한다고 본다"며 의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