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정부조직법안 우려 "질병관리청 보건차관 산하 불과" 의료법·약사법 유지, 감염병 내용만 이양 "복지부 영향력 강화"
"검역소장 13개 자리 내주고, 150명에서 더욱 확대될 국립감염병연구소 자리 꿰찼다."
의료계는 보건복지부의 복수차관제 신설과 질병관리본부의 청 승격의 행정안전부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강한 우려감을 표했다.
앞서 행정안전부는 지난 3일 정부조직법 개정안 입법예고와 조직개편 방안을 통해 질병관리본부의 질병관리청 승격 그리고 보건복지부의 보건차관 도입 등을 발표했다.
행자부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감염병 대응역량 강화라고 홍보하고 있으나 정부조직 개편안 속내를 보면, 복지부 권한만 강화한 "그들만의 잔치"라는 비판이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복지부 업무영역에서 감염병 관련 보건위생과 방역을 질병관리청으로 이관한다.
하지만 의정과 약정 업무 권한을 유지해 신종 감염병 발생 시 의료기관과 약국 등 전체 요양기관의 실질적 권한은 여전히 복지부이다.
또한 질병관리청은 복지부 소속 외청으로 규정했다.
질병관리청장에게 인사권과 예산권을 부여했지만 복지부 복수차관 도입에 따른 보건차관의 소속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 정책적 실행력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의료법의 경우, 제21조(기록열람 등) 중 3항 16호인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감염병 역학조사 및 예방접종에 필요한 진료기록 제출 권한만 질병관리청으로 이관된다.
또한 의료법 제40조 3항(휴폐업 신고)과 제47조(의료관련감염 예방) 그리고 약사법 제23조(의약품 조제) 3항 3호 등 감염병 관련 항목에 국한해 질병관리청이 맡게 된다.
의료계가 우려하는 부분은 국립보건연구원의 감염병연구센터를 확대 개편한 국립감염병연구소 신설을 복지부가 맡는다는 점이다.
감염병 감시와 치료제 및 백신 개발, 상용화까지 담당하는 국립보건연구원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기관으로 보건 전문가 출신이 원장을 맡아왔다.
국립보건연구원의 핵심인 감염병연구센터는 의사와 간호사, 행정인원 등 150여명이 정규직과 계약직으로 근무 중이다.
검역법을 질병관리청으로 이관하며 복지부 공무원들의 전국 13개 검역소장 자리를 내주는 모양새이나, 감염병연구센터를 감염병연구소로 확대 개편하며 부서 신설과 인력 확대로 소장직과 부서장직 등을 복지부가 주무르는 형국이다.
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메디칼타임즈와 통화에서 "복지부가 질본 청 승격으로 업무와 권한을 내준 것처럼 하면서 실제 자기들 이속은 더 많이 챙겼다. 방역과 감염 부분만 발라내 질병관리청에 업무를 이양했다"고 꼬집었다.
엄중식 교수는 "질병관리본부의 청 승격은 높게 평가하나, 복지부 외청으로 제대로 된 정책 집행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결국 복지부 관료주의 손아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직전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한림의대 호흡기내과 정기석 교수는 '복지부의 강탈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기석 교수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감염병연구센터를 복지부가 갖겠다는 의도가 의심된다. 겉으로는 질병관리청 독립성을 부여한 것 같지만 보건차관 산하 청으로 현 질병관리본부 체계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 교수는 "정부조직 개정으로 복지부 실국장 자리를 늘리고, 권한을 강화한 집안 잔치에 불과하다. 현 질본 주요 센터장을 복지부 출신이 꿰차고 있는 상태에서 방역 업무에 매진 중인 정은경 본부장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며 “국회 법안 논의에 대비해 의료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포함한 헬스산업 육성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복지부 임인택 보건산업정책국장은 4일 중대본 정례브리핑에서 "질병관리본부가 청으로 승격되더라도 감염병 관련 치료제와 백신 개발과 기술 그리고 바이오헬스산업 지원은 국립보건연구원에서 맡아주는 게 좋겠다는 정책적 판단이 있었다"고 답변했다.
임인택 국장은 "미국 등 국제적 추세를 보더라도 방역기능과 연구기능은 별도 독립적 존재가치가 있다. 바이오헬스산업 기반 역량을 강화하는 데 필요하다"며 복지부로 이관될 국립보건연구원 감염염연구센터 배경을 설명했다.
제21대 국회 초반 여야가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 힘겨루기를 지속하고 있어 행정안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구성 후 정부조직법 개정안 심의과정에서 격론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