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시켜 제2의 코로나19 파동에 대비한다고 한다. 정부안에 따르면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가 제대로 행사할 수 없었던 독자적인 인사와 예산에 관한 권한은 승격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개편안을 보면 기가 막힌다. 우선 질본의 소속기관으로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K방역의 기초를 세우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는 국립보건연구원(이하 보건원)을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 소속으로 전환시킨다고 한다. 이 문제는 대통령의 전면 검토 지시로 백지화 될 수도 있으나 아직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보건원은 감염병 연구를 비롯한 질병관리를 위해 필수적인 연구를 수행하며 긴 세월을 질본과 동고동락 해온 조직이며 2004년 창설된 질본의 전신이다. 소속 인력만 해도 공무원과 공무직을 합치면 400명에 달하는 큰 조직이고 주요 업무를 담당하는 대다수는 박사나 석사 소지자들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평소에도 법정 감염병, 유전체, 심혈관질환, 호흡기질환, 뇌질환, 희귀질환 등의 연구로 질병관리본부 행정업무의 의학적, 과학적 기반을 조성해왔으며 이번 코로나19 방역에도 바이러스 배양과 유전자분석을 비롯하여 진단키트,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의 중심에 서 있다.
이런 기관을 떼어 내겠다는 정부안에 어안이 벙벙하다. 분리해야 하는 이유로, 정부는 감염병 관련 업무 이외 바이오헬스 등 다양한 기술 지원 업무가 이뤄지며 다수 부처의 협력이 필요한 업무가 다수 포함돼 복지부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했다. 일견 맞는 말이다. 하지만 보건의료관련 R&D 예산의 약 80%는 보건산업진흥원을 통해 복지부가 이미 집행하고 있으며, 국립보건연구원은 고작 10%만 배정해왔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우선 국립보건연구원이 전체 R&D예산을 집행하도록 해주는 것이 순서이다. 분리의 배경으로 미국 CDC 와 NIH를 거론했는데, 그렇다면 그와 같은 처우를 해주면 분리가 가능하다. 미국 2개 기관은 소속은 보건부에 있지만,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고 의회 청문회도 거치는 우리와는 비교조차 안 되는 매우 권위 있는 기관들이다.
또한 보건원은 국립백신지원센터, 병원체자원은행, 바이오뱅크 등 우수한 시설과 자산들을 보유하고 있어 질본의 고유업무 수행에 맞춤형 연구기관의 역할을 해왔다. 뿐만 아니라 가장 위험한 병원체를 취급하는 BSL4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은 특수시설이며 이를 통해 에볼라 등 치명적 바이러스 연구를 함으로써 또다른 팬데믹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 모르나, 이런 세부사항을 다 알고 분리를 추진했으면 매우 나쁜 정책이고,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첫째는 복지부가 복수차관을 절실하게 원했기 때문이다. 보건차관이 맡을 새로운 업무가 필요했던 것이다. 보건원과 더불어 가져가려는 장기이식센터(KONOS), 혈액안전업무 등도 질본의 전문가들이 지금까지 해온 고유사업이다.
특히 국립감염병연구소를 만들고 이를 질본에 두지 않겠다는 발상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보건 담당 차관도입은 필요하다. 현재의 과중한 보건의료정책 업무와 궁극적으로 보건부의 독립을 위해서라도 2명의 차관이 있는 것이 옳다. 하지만 질본의 청 승격과 맞물리면 지휘권의 분산으로 상충하게 된다. 질병관리청이 복지부의 외청이므로 보건차관은 청장에 대해 지휘권을 가지게 되며, 이는 질본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결과가 된다. 지금도 본부장은 차관급이므로 서열상 복지부내 3위이다.
보건차관이 들어서면 4위로 밀리게 되며, 이는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심각한 청의 위상 격하로 이어진다. 메르스 수습으로 차관급 질본을 만들게 되었는데, 막상 일을 해보니 무늬만 차관이었다. 인사는 6급 이하 공무원만 재량권이 있었고, 예산편성도 복지부에 항상 우선 순위가 밀렸다. 같이 일하는 5급 공무원이 4급으로 승진하는 인사위원회에 참여도 못하는 기관장이 과연 지휘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예산도 제대로 따지 못하는 기관장을 누가 신뢰할까. 지금의 사태에 질본과 보건원 구성원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도 복지부의 인사권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복지부가 질본의 독립을 내심 바라지 않는데 있다. 식약처 독립한 전철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독립성과 전문성 보장 선언으로 청으로의 승격은 거스릴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그래서 사전에 최대한 지분(인원과 예산)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이번 정부 조직개편안에 실리게 된 것이다. 청장에게 감염병 컨트롤타워 역할을 일임을 한다면서 중수본부장은 왜 맡기지 않는가. 지휘권 보장을 위해 의료기관 보상에 관한 것은 청장이 결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이 모든 것이 separation anxiety 라고 보면 된다.
이미 독립행 열차는 플랫폼을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보건부라는 종착역에 다다를 것이다. 그래서 차제에 청 보다는 처로의 격상을 제안한다. 국무총리실 직속이 되면 보건차관 도입과도 무관하게 된다. 그리고 복지부는 지금부터 보건차관이 주도하여 보건과 복지를 분리하는 작업에 착수하면 된다.
그 작업의 첫발은 학교보건, 환경보건, 산업보건, 노동보건 등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보건 행정을 통합하고, 지자체 보건소를 보건부로 이관시키는 것이다. 현재 교육부, 환경부, 산자부, 노동부, 보훈처 등은 보건의료전문성이 거의 없는 인력들이 해당 부처의 보건을 맡고 있어 의료계에서 보기에 답답할 때가 적지 않다. 첫 발을 떼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나, 선진국을 향한 발걸음이니 그리해야 한다.
또한 전국의 국공립 의료기관도 보건부가 관장을 해야 한다. 이번 코로나19도 국공립 기관이 지자체, 산자부, 보훈처, 국방부, 행안부 등에 산재한 관계로 일사 분란한 병실 수급이 불가능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국공립병원의 수준 향상으로 전 국민이 고른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 정부가 강력하게 원하고 있는 공공의료 인력의 확보 및 발전과도 일맥상통한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