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회 고혈압학회 학술대회, GLP-1 특별 세션 열고 집중 탐구 복합 기전으로 혈압 강하 및 심혈관 보호…주사 제형은 한계
"당뇨약으로 개발됐지만 신장약이 되고 싶은 약이 아닌가 한다. 고혈압을 치료하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난 7, 8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제52회 대한고혈압학회 춘계국제학술대회에서는 새로 개발된 당뇨병약제가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당뇨병약으로 개발된 SGLT-2 억제제와 GLP-1 제제가 신장과 심부전 치료 및 보호 효과를 나타내면서 이제는 진지하게 '고혈압 치료' 영역에서 해당 약제의 활용 가능성을 모색하게 된 것. 이러한 행보는 그만큼 간과할 수 없는 약물임을 반증한다.
고혈압학회는 GLP-1의 심혈관계 사망률을 줄이는 기전 및 SGLT-2와 혈압과의 관계 등 총 5개의 세션 강좌를 전진 배치하며 향후 활용 방안에 대해 모색했다.
▲단순한 혈당강하제 아니다…GLP-1과 심혈관계 상관성은?
GLP-1의 심혈관 보호 효과는 다양한 연구에서 입증됐다. 리라글루타이드를 대상으로 한 LEADER 연구에선 주요심혈관사건(MACE)을 약 13% 낮췄고, 심혈관 사망은 22%, 모든 원인 사망은 15% 낮췄다. 만성신부전(CKD)으로의 진행은 22% 늦추는 효과를 보였다.
세마글루타이드를 대상으로 한 SUSTAIN-6 연구도 비슷한 효과가 관찰됐다. MACE는 26%, 비치명적 스트로크 발생은 39%, CKD 진행은 36% 낮아졌다.
두라글루타이드를 연구한 REWIND 연구에선 MACE가 12%, 비치명적 스트로크가 24%, CKD 진행률은 15% 낮아지는 효과를 보였다.
권혁상 가톨릭의대 교수는 이와 관련, 세계 학회들이 GLP-1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변경했는지 설명했다.
권 교수는 "세계 학회들은 GLP-1이 가진 신장 및 심혈관 보호 효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며 "이에 따라 2018년 미국당뇨병학회(ADA), 유럽당뇨병학회(EASD)는 ASCVD(동맥경화성심혈관질환) 환자에는 GLP-1을 사용하라고 권고했다"고 말했다.
이어 "심부전이나 만성신부전을 가진 경우 심부전 보호 효과가 있는 SGLT-2 약제를 사용하되, CKD 진행정도에 따라 GLP-1 추가 사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며 "이는 유럽심장학회(ESC) 권고 사항에서도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유럽심장학회는 GLP-1 성분인 리라글루타이드, 세마글루타이드나 두라글루타이드를 제2형 당뇨와 심혈관계 질환을 보유했거나, 심혈관 위험이 높은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사용할 것을 A 등급으로 권고했다.
권 교수는 "유럽심장학회는 제2형 당뇨병환자를 치료할 때 약제 선택의 주요 기준으로 심혈관 위험 요소를 제시했다"며 "ASCVD가 있거나 심혈관 고위험 환자를 심혈관 위험을 줄이기 위해 SGLT-2와 GLP-1으로 치료하라는 권고는 2019년 미국 심장병학회·심장학회 가이드라인으로도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치료 권고 기준은 2020년 더욱 정교해진다. 미국당뇨병학회와 유럽당뇨병학회 가이드라인은 ▲ASCVD를 가졌거나 ▲55세 이상이며 좌심실비대증 ▲관상동맥, 경동맥, 하지동맥협착증 50% 이상인 경우 GLP-1을 사용하거나, eGFR 수치가 적절하다면 SGLT-2 사용이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만일 심부전이 있는 경우라면 심부전 보호 효과가 입증된 SGLT-2의 사용이 우선된다.
권 교수는 "유럽심장학회는 2019년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GLP-1을 심혈관 질환을 가진 제2형 당뇨병에게 메트포르민에 앞선 1차 치료 약제로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며 "메트포르민에 앞서 사용해야 하는지 여부는 ESC와 EASD/ADA의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당뇨병약제가 혈압도 낮춘다…기전은?
이희선 서울의대 교수는 GLP-1 약제의 혈압과의 상관성을, 유태현 연세의대 교수는 SGLT-2 억제제와 혈압과의 관계를 짚었다.
먼저 이희선 교수는 "GLP-1의 심혈관계 이점에 대해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며 "기전이 완벽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심혈관 보호 효과가 심박출량 증가, 체중 감소와 연관성이 있어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GLP-1은 혈당을 낮추는 당뇨병 약제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신체 장기에 영향(pleiotropic)을 미친다"며 "심장에서는 혈압을 낮추고 심박 수 증가, 심근육수축성 증가와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심지어 뇌에도 영향을 끼쳐 식욕 억제와 포만감을 늘리고, 에너지 소비를 늘린다"며 "신장에서의 나트륨 배설 증가, 근육에서의 글리코겐 합성 증가 등 수많은 현상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심혈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GLP-1 투약시 포만감이 올라가고 식욕이 억제하면 이는 체중 감소로 이어진다. 또 인슐린의 분비 증가, 글루카곤 감소 및 심장 활동이 좋아지고 인슐린 저항성의 감소, 지방간의 감소, 혈관 염증 감소 등의 작용이 연쇄 혹은 복합적으로 일어나면서 심혈관 보호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 학계가 제시한 잠재적인 기전이다.
특히 고혈압 환자중 당뇨로의 추가 유병률이 약 25%, 당뇨병환자 중에 고혈압 추가 유병률이 55.3%에 이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뇨와 고혈압은 증상 발현 및 악화에 비슷한 기전을 공유함을 알 수 있다.
이 교수는 "이미 GLP-1을 사용한 다양한 동물 실험에서 혈압 감소가 관찰됐다"며 "실제 인간을 대상으로한 ELIXA 임상에서는 수축기 혈압에서 0.8mmHg 감소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LEADER 임상에서는 수축기 혈압은 1.2mmHg가 감소했지만 이완기 혈압은 0.6mmHg가 증가해 논란이 있었다"며 "하지만 다양한 연구들을 메타 분석해보면 수축기 혈압은 평균 2.22, 이완기는 0.47mmHg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SUSTAIN-6 임상에서는 용량에 따른 추가 혈압 감소 패턴이 관찰된 만큼 GLP-1 제제와 혈압은 관련성을 부인하기 힘들다는 게 그의 판단.
이 교수는 "SUSTAIN-6 임상에서 평균 수축기 혈압 135.6mmHg인 환자들에게 0.5mg의 세마글루타이드를 투약했을 때 1.3mmHg가 감소했다"며 "반면 1.0mg을 투약했을 때는 2.6mmHg가 감소해 용량 의존성 패턴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i3#이어 "이런 현상은 두라글루타이드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며 "혈압 감소 현상은 투약 2~3주 안에 빠르게 발현되는데 다른 항고혈압 약제와는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유태현 연세의대 교수 역시 SGLT-2가 신체 내 다양한 기전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혈압을 낮추는 것으로 제시했다.
유 교수는 "SGLT-2는 다양한 기전을 통해 혈압을 낮추는 것으로 추론된다"며 "체중이 감소하고 나트륨 배출량이 증가, 삼투성 이뇨 작용의 증가, 동맥경직의 감소가 전반적으로 작용해 혈압 및 심부전 감소로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2016년부터 카나글리플로진, 다파글리플로진, 엠파글리플로진과 같은 SGLT-2 억제제 성분이 제2형 당뇨병 환자에서 혈압 감소에 기여한다는 연구가 나왔다"며 "다파글리플로진을 대상으로 한 2020년 연구에서는 SGLT-2 억제제가 혈관 내피세포 손상 감소에도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복합 작용 기전 효과를 설명했다.
정미향 한림의대 교수는 지질효과에 대해 첨언했다. 그는 "GLP-1이 지질 프로파일을 향상시킨다"며 "DPP-4 억제제는 각 성분마다 중성지방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등 일관되지 않은 결과를 보여주는 반면 GLP-1은 다양한 성분들 모두 중성지방 감소 효과를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LDL-C 콜레스테롤 수치 변화에 있어서도 DPP-4 억제제와 달리 GLP-1은 일관된 감소 효과를 보인다"며 "심혈관 질환이 낮은 HDL 콜레스테롤 수치, 높은 중성지방, 인슐린 저항, 고혈압, 내장비만의 복합 작용의 의해 발생하는데 GLP-1은 이런 부분에 다양하게 작용, 심혈관 위험을 낮춘다"고 덧붙였다.
▲GLP-1의 신장약 가능성 충분…한계는 '주사 제형'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GLP-1은 한계도 분명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언급이다. 무엇보다 의료기관을 방문해 맞아야 하는 주사 제형이라는 점이 처방 및 투약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잇다.
GLP-1이 신장약이 될 수 있냐는 질문에 정미향 한림의대 교수는 가능성 만큼 한계도 뚜렷하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주사제이지만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만족도가 높은 약물"이라며 "경구약으로 혈당조절이 안 되는 환자, 식후 혈당 조절이 안 되는 때 쓸 수 있고 워낙 심혈관 효과가 좋아서 CV 리스크 위험 요인이 있는 환자에게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CV 혜택에도 불구하고 장벽은 있다"며 "매일 맞아야 하는 주사라는 게 가장 큰 한계"라고 지적했다.
그는 "리라글루타이드의 경우 1주일에 한번 맞으면 되니까 그나마 선호도가 높다"며 "이런 약제의 경우 신장약이 될 순 있겠지만 주사제라는 한계는 역시 제한점으로 남는다"고 덧붙였다.
좌장을 맡은 현민수 순천향의대 교수는 "GLP-1은 당뇨약으로 개발됐지만 신장약이 되고 싶어 한다"며 "고혈압학회에서 특별 세션을 마련할 정도로 이미 고혈압을 치료하는 많은 분들이 이 약제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