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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없는 병원 솔직히 두렵다…그래도 버텨보자"

발행날짜: 2020-08-24 05:45:59

교수들 "병원 내가 지킬테니 걱정마라" 전공의 지지
정부 행정처분 압박 역효과…의사들 전우애 더 끈끈

|메디칼타임즈=공동취재팀|"Do No harm,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 의료인으로서 평생을 건 원칙에 따라 행동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의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저희의 목소리를 들어주십시오." -전국 만육천 전공의 올림-

8월 23일 오전 7시. 서울아산병원 1층 로비에는 전공의 수명이 모여 결의문을 낭독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결의문을 낭독하는 전공의 뒤로는 서울아산병원 전공의들이 벗어 모아둔 의사가운이 수북이 쌓였다. 서울아산병원 이외 전국 모든 수련병원도 마찬가지다.

서울아산병원 전공의들은 23일 오전7시. 결의문을 낭독하고 무기한 파업 돌입을 알렸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밝힌 전공의 파업 일정에 따르면 21일 인턴, 레지던트 4년차에 이어 22일 레지던트 3년차, 23일 레지던트 1,2년차를 끝으로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는 일체 파업에 들어갔다.

주말, 공휴일은 물론 밤낮 없이 병동을 지키던 전공의는 더 이상 없다. 응급실과 수술장에서 굳은 일을 도맡아 하던 전공의도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최후의 보루였던 전임의도 상당수가 24일을 기점으로 떠난다.

다시 말해 앞으로 24시간을 교수 인력만 믿고 병원을 운영해야 한다. 교수가 밤 당직서고 병동환자 케어하면서 다음날 외래 진료하고 수술까지 해야하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이 됐다. 일각에선 '의료재난' 상황이라는 말도 나온다.

일선 병원들은 수술은 물론 외래진료까지 축소하며 비상체계로 전환했다.
이쯤되자 당장 의료현장을 지키는 교수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일단 급한데로 수술, 외래 진료를 최소한으로 줄여놓은 상황. 실제로 소위 빅5병원인 S대학병원은 21일부터 수술 환자들에게 연락해 수술 연기 동의를 구하고 나섰다. 이외 대부분 대학병원들이 암을 포함한 수술 일정을 조율해 최소화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한 교수는 "수술 축소는 의료진이 감소하는데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다. 자칫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수술을 최소화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제성모병원 한 교수는 "수술 30~40%를 줄이는 등 절반쯤 마비된 상황"이라며 "낮에 2명, 야간 2명으로 2교대하면서 버텨야하는데 장기화되면 교수들 피로가 누적되면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전공의 의료공백에 대한 우려가 높은 반면 상당수 교수들이 전공의들의 행보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복지부 대변인, 장관 등 공개석상에서 의료계를 압박하는 발언이 나올 때마다 의대생부터 전공의, 전임의, 교수들은 하나로 뭉쳐 전우애를 불태우는 모습이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모 교수는 "지금의 상황이 우려스럽고 걱정되지만 전공의들의 행보에 이견을 제기하고 싶지 않다. 일각에선 여론을 악화하려는 조짐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공백을 채우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모 교수는 "동료, 후배 교수들과 앞으로 3개월 이상 당직이 이어질 각오를 이미 했다"며 "젊은의사들이 저렇게 나서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되겠나. 끝까지 병원을 지켜내겠다"고 전했다.

교수진이 많은 빅5병원도 전공의 파업 여파로 암수술 일정까지 조율에 들어갔다.
여기에 의대교수들이 SNS에 게재한 글이 거듭 공유되면서 결속력을 다지고 있다. 인하대병원 영상의학과 모 교수는 자신의 SNS에 "교수 인원 수가 적어서 일주일에 당직을 2번 설 예정"이라며 "교수 당직 스케줄을 짜는데 서로 먼저 나서 이름을 적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전공의들에게는 "병원 생각하지 말고 투쟁하고 오라"며 덧붙였다.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모 교수 또한 자신의 SNS를 통해 "나를 교수이게 한 것은 학생들이며, 내가 그동안 마음껏 수술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 것은 전공의들과 전임의들이다. 같이 정말 즐겁게 많은 환자를 살렸다"며 "그들이 옳은 주장을 하며 진료현장을 떠나기로 결정했는데 내가 어찌 그들을 돕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적었다.

그는 이어 "어떤 파업이라도 생명보다 소중할 수는 없기 때문에 생명이 위협받는 환자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지만 그 이상의 진료는 전공의, 전임의가 돌아온 후로 미룰 것"이라며 "학생, 전공의, 전임의 누구도 파업으로 손해를 보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고강도 행정조치 입장을 밝히면서 의사면허번호 챌린지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정부가 전공의 등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의사면허정지 등 고강도 행정조치를 언급하자 SNS를 중심으로 "내 의사면허부터 취소하라"며 의사면허번호 챌린지가 이어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조승국 홍보이사가 시작한 의사면허번호 챌린지는 교수, 개원의를 넘나들며 "이런 나라에서 의사는 의미 없다"며 자신의 의사면허번호를 올리고 있으며 일부 간호사까지도 동참하며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버겁고 힘든 것은 일선 대학병원 의료진. 일선 교수들은 정부를 향해 "젊은 의사들이 병원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설득해 달라"로 호소하고 있다.

의료현장 여의도성모병원 한 교수는 "대학병원에서 환자치료에 손과 발이 역할을 했던 의료인력이 다 빠지는 것인데 그 심각성을 다들 알아야한다"며 "제발 빨리 합의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서울아산병원 한 교수는 "정부가 불필요하게 상대를 자극하는 발언을 해선 안된다. 이는 의사협회와 전공의협의회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전공의들은 돌아올 생각이 없는 길을 떠났고, 의대생은 더 강경하다. 정부가 먼저 손을 내밀고 이들을 설득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신의대 김부경 교수가 올린 국민청원 캡쳐.
고신의대 김부경 교수는 '지금 당장 전쟁을 멈추고, 의사들을 코로나 진료현장으로 투입시켜 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국민청원을 올렸다.

자신을 지방 의과대학 내과 교수라고 밝힌 그는 "코로나 상황 이후 단 하루의 휴가나 연차없이 환자를 돌봤다. 감염내과 교수들도 코로나 환자를 전공의에게 전가하지 않았다"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전제조건은 다른 환자를 책임져주는 전공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그는 이 싸움을 시작한 것은 정부라며 "의사에게 칼을 빼든 것은 정부다. 전쟁을 시작한 것은 의사가 아니므로 전쟁을 멈출 수 있는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도 정부이지 의사들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지금 코로나 절체절명의 위기다. 코로나 환자는 폭증하고 있고 코로나 이외 질병은 치료가 연기되고 있으며 병원에 남아있는 교수의 심정적 동요가 심상치않다"며 "의대정원 확대 문제는 코로나 상황이 완전히 해결된 후 원점에서 재검토해달라"고 거듭 호소했다.

그는 이어 "더이상 전공의들을 겁박하지 말고 설득해 의료현장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덧붙였다.
"정부, 협박 멈추고 우리의 목소리 들어달라"
서울아산병원 서재현 전공의대표(정형외과 4년차)
#i1#"23일 오전 7시를 기점으로 무기한 파업이다. 정부가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환자의 생명은 우리가 지켜야할 최대 가치다. 만약 의료현장의 교수들이 '더 이상은 못버틴다. 돌아와달라'고 한다면 그때 돌아올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서재현 전공의대표(정형외과 4년차)의 말이다. 그는 23일 오전 7시 서울아산병원 1층 로비에서 파업에 돌입을 알리는 성명서를 낭독하며 전공의 무기한 파업을 알렸다.

그는 파업에 대한 결의에 차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환자를 남겨두고 병원을 떠나는 것에 대해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그래도 힘을 내서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은 병원 내에서 많은 교수들이 자신들을 지지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것도 병원에서 전공의를 대신해 의료현장을 지키고 있는 교수들 뿐이라고 했다.

즉, 집단행동 표면에는 의대생, 전공의가 있지만 그 뿌리에는 의대교수들이 받쳐주고 있다는 의미다.

서 대표는 자신들이 병원에 복귀하는 시점 또한 정부가 입장을 바꾸거나 의료현장에 남은 교수들이 더이상 못버티는 순간이라고 했다.

"우리도 이 상황이 안타깝고 힘들다. 게다가 의대생들은 의사국시까지 취소하는 모습에 더욱 그렇다. 솔직히 정부가 협박이 아니라 의대생들을 어르고 달래줬으면 한다. 왜 이렇게까지 집단행동에 나서는지 목소리를 듣고 귀를 기울여준다면 오히려 젊은의사들은 정부의 편이 될 수도 있는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는 일각에서 의사를 향해 환자를 볼모로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식의 여론으로 흘러가는 모습에 씁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밥그릇싸움이 아니다. 의대생이 무슨 밥그릇이 있겠나. 보건의료는 의사들의 것이 아니다. 국민모두의 것이이다. 나중에 잘못된 정책이 추진된 이후에 국민들을 위해 의사들이 싸웠다고 알 수 있을까. 지금 의사들의 목소리를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