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약자 등 민감도와 순응도 앞세워 검진기관 빠르게 잠식 의원급 기관·일부 학계는 회의적…"가격대비 효용도 적어"
대장암 바이오마커를 활용한 조기 진단 키트가 출시 1년만에 순응도를 앞세워 빠르게 검진 기관으로 확산되고 있다.
민감도와 특이도를 기반으로 대장내시경에 대한 부담감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도입하는 기관이 늘고 있는 것. 하지만 의원급 기관과 일부 학계에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노믹트리 얼리텍 출시 1년만에 검진 기관 등 빠르게 잠식
4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장암 조기 진단 키트인 얼리텍(EarlyTect-C)이 검진 기관을 기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고 시장에 나온지 1년 만에 상당수 검진 기관에 랜딩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실제로 얼리텍은 출시 당시인 4월 약 50여개 기관에서만 제한적으로 랜딩됐지만 5월말 100개로 두배 이상 늘어난 뒤 8월 340곳, 10월 55곳 12월 800곳을 돌파하며 빠르게 시장을 잠식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올해에도 지속적으로 도입하는 기관이 늘어나면서 9월 현재 1000곳을 돌파하며 점유율을 늘려가는 중이다.
현재 대장암 검진을 진행하는 의료기관 수가 2700여곳이라는 점에서 이미 전체 기관의 40%는 얼리텍을 도입했다는 의미가 된다.
이처럼 얼리텍이 빠르게 시장에 확산되고 있는 배경은 역시 순응도다. 키트를 통해 말 그대로 선행 검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대장내시경의 특성상 전날부터 금식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 다량의 정결제를 복용하는 등의 불편함과 수면내시경에 대한 거부감 등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는 이유다.
특히 수면내시경을 진행하기 힘들고 천공 등의 위험성이 있는 고령의 노인 인구 등에서는 이러한 장점이 부각되며 수검자가 먼저 이를 제안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기업형 건강검진기관 A이사장은 "내시경에 부담을 느끼는 고령의 환자들을 중심으로 얼리텍에 대한 수요가 있는 편"이라며 "TV 광고의 영향도 있는 듯 하다"고 귀띔했다.
민감도와 특이도 상당 수준…임상시험 등 연구에서도 안정적
그렇다면 얼리텍의 확산은 어느 부분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까. 일단 최근 급성장하는 체외 진단 키트의 장점에서 그 배경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암 진단에는 다양한 바이오마커들이 활용되고 있다. 비정상적인 DNA 메틸화, 즉 DNA 서열은 변하지 않고 메틸기가 달라 붙는 화학적 변화를 감지해 암을 선별적으로 진단하는 방식이다.
메틸화가 일어나면 유전자 발현이 차단돼 암으로 진행하고 이러한 기전은 암이 진행되더라도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만큼 이를 바이오마커로 삼는다면 내시경 등을 진행하지 않고도 조기 진단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대장암 분야에서는 지난 2013년 Vincenteet 연구가 큰 영향을 미쳤다. 320례의 대장 조직을 대상으로 신데칸-2 메틸화를 분석한 결과 대장암 병기와 관계없이 95% 이상 메틸화 양성이 나타난다는 점이 규명되며 조기 진단을 위한 강력한 바이오마커로 떠오른 것이다.
얼리텍도 이러한 신데칸-2 메틸화를 이용한 국내 첫 대장암 조기 진단 키트다. 지노믹트리가 이 바이오마커를 활용해 식약처 제조 승인을 획득했으며 이후 세브란스병원과의 협업으로 대규모 임상 연구를 통해 그 가능성을 입증했다.
당시 세브란스병원 건강검진센터인 체크업을 통해 636명의 대장암 샘플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시험에서 얼리텍은 민감도 및 특이도가 각각 90%를 기록했다.
특히 조기 대장암인 0-2기 환자에 대해서도 민감도가 89%를 기록하며 조기 진단에 대한 유효성을 확인하며 시장성을 확인했다.
이렇듯 DNA 메틸화를 이용한 대장암 조기 진단 키트는 얼리텍이 최초는 아니다. 현재 가장 시장 점유율이 높은 키트는 미국의 이그잭트 사이언스사의 콜로가드로 연간 3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가져가고 있다.
지노믹트리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에 목을 매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얼리텍이 콜로가드와 대등한 민감도를 가진데 반해 소량의 대변과 짧은 반응 시간만으로 진단이 내려진다는 점에서 시장성을 가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대형 검진 기관 및 의료기관에서도 얼리텍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상당수 검진 기관에 랜딩되며 빠르게 도입 기관이 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가정의학과 정태하 교수는 "현재 분변 잠혈 검사가 민감도 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유효성과 순응도가 입증된 얼리텍이 조기 진단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높은 검사 신뢰도를 가진 만큼 양성 환자 확진을 위한 대장내시경 순응도를 늘리는 역할도 하게 될 것"이라며 "이렇듯 순응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대장암 및 용종의 조기 발견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생존률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가격 경쟁력 한계론…의원급 기관들 회의적
하지만 이러한 기대감에 비해 일부에서는 국내에서 확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검진기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의원급에서 외면받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분별 잠혈 검사에 비해 민감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고 대장내시경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는 이점은 분명하지만 가격적인 면에서 메리트를 갖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
강동구의 B내과의원 원장은 "TV 광고 등의 영향으로 얼리텍에 대한 문의는 제법 있는 편이지만 실제적 수요는 그리 크지 않다"며 "도입 초기에는 제법 수요가 있었지만 지금은 한달에 한두건 정도 진행하는 것이 전부"라고 귀띔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대장내시경 수가가 워낙에 낮다는 점에서 20만원이 넘어가는 비용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며 "더욱이 전 국민 건강검진을 시행하고 있다는 점도 수요가 제한되는데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얼리텍은 비급여라는 점에서 기관마다 가격이 상이하지만 개략적으로 20만원에서 25만원 선에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얼리텍 자체가 자체 진단식 키트가 아닌 것이 가격적인 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
실제로 얼리텍은 사실상의 B2B 형식이다. 의료기관에서 키트를 활용해 분면을 수집하면 이 키트를 지노믹트리 본사에 보내고 지노믹트리는 DNA 분석을 진행한 뒤 진단 결과를 다시 의원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B2B간 실비 정산은 15만원 선에서 정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환자에게 20만원의 검사비를 받게 되면 지노믹트리에 15만원을 정산하고 5만원이 남는 구조다.
문제는 이러한 비용이 사실상 확진 및 즉각적 시술이 가능한 대장내시경 비용에 비해 크게 높다는 점이다.
대장내시경은 비수면일 경우 비용이 4만원에 불과하며 수면으로 진행해도 9만원대에서 검사가 가능하다. 얼리텍과 많게는 5배 이상 비용 차이가 있는 셈이다.
이 원장은 "얼리텍으로 대장암 의심 진단이 나오면 또 다시 대장내시경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조기 진단 키트의 한계"라며 "노약자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수요층이 제한될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시장 진출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검진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의원급 검진기관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단순히 테스트 베드로만 여기고 있다는 것.
내과 계열 의사회 임원인 B내과 원장은 "출시 초기 의원급 확산을 위해 노력했던 것과 달리 1년만에 아예 의원급 영업과 관리를 다른 회사에 넘겨버리는 등 외면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라며 "대형 기관 몇 곳에 타켓팅을 해서 FDA 승인을 받기 위한 최소 조건만 맞추려는 듯 하다"고 귀띔했다.
아울러 그는 "의원급 검진기관을 이렇게 취급하며 의사회 마저 무시하는데 이 제품을 써줄 이유가 없다"며 "의원급에서는 이미 사라지는 추세"라고 전했다.
대학병원급 대형 검진기관과 의원급 검진기관과의 온도차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장내시경의 부담감을 해소하는 순응도와 가격 부담 사이에서 얼리텍이 갈림길에 섰다고 분석하고 있다.
대한종합건강관리학회 동석호 이사장(경희의대)은 "전문가들로 이뤄진 학회 이사회에서 충분히 안전성과 효과성을 분석했다는 점에서 이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며 "일부 비용적 측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는 수검자와 검진기관의 선택 범주 아니겠냐"고 말했다.